게재년월 ; 2004년 8월호
제목 : 시장 전망 ‘쾌청’, 업계 현황 ‘흐림’
부제목 : 설치 의무화… 공급과잉, 인증·검사 남발

지난 5월 30일 경기도 여주군 한 아파트에서는 승강장 복도 물청소 후 귀가하기 위해 1층에서 피해자(33, 남)가 탑승하는 순간 문이 열린 채 카가 상승, 승강장 문틀 상부와 카 바닥 사이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승객을 태우고 7층까지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강한 충격과 함께 중간에 멈췄다가 4층으로 다시 추락했는가 하면, 약 한 달 전에는 제주도에서 전력 공급용 해저 케이블에 장애가 발생해 승객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난 1993년부터 2004년 6월 현재까지 전체 승강기 사고건수는 2백40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 중 개문발차만 19건, 과속 상승·하강, 정전사고도 약 15여 건으로 집계돼 전체사고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적어도 중상(사망 포함) 이상의 결과물이 도출된다는 점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0년 7월 25일 승관법 제 13조4항 및 동법 시행령 제14조의2제1항 규정에 의거, 승강기 검사기준 1차 개정(기술표준원 고시 제2000-177호)에 이어 지난해 6월 18일에는 2차 개정(기술표준원 제2003-655호)을 단행해, 상승방향 과속방지장치 및 개문발차방지장치에 대한 설치 의무화 조항을 신설한 바 있다.
1차 개정시에는 2000년 10월 1일 이후 건축 허가분부터 건축법 시행령 제5조 제4항 제8호에 규정된 ‘다중이용건축물’에만 적용했으나, 2차에 이르러서는 2003년 6월 18일 이후 건축 허가분의 모든 건축물(아파트 포함) 적용과 아울러 고시 후 6개월부터 계약하는 노후·수리불능 등의 교체 승강기 및 기존 건축물에 신규 설치되는 승강기까지 같은 범주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2003년 6월 18일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모든 건물에는 개문발차 등의 안전사고를 방지하는 승강기 안전 제동장치인 ‘로프 브레이크(Rope Brake)’가 의무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로프 브레이크 설치 의무, ‘세계화 추세’
국내 승강기 총 설치대수가 2001년 20만7천대, 2002년 23만2천대, 지난해에는 26만대에 이르는 등 매년 2만 여 대씩 신규 설치되면서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로프 브레이크 시장 또한 성장의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설치 의무 법제화가 시작된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승강기 설치대수가 하향 굴곡없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올 한해만 4백억 이상의 시장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로프 브레이크 법제화는 안전강화 추세에 따라 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990년부터 이미 설치의무 법제화를 완료한 캐나다를 시작으로 미국도 1994년부터 현재 26개 주가 실시 중에 있다.
유럽과 홍콩은 이미 EN 81 코드 규격에 맞춰 시행 중이고 중국은 2005년 1월 법제화를 코 앞에 두고 있으며 일본도 자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규모 2백억 달러(한화 약 22조원), 총 설치대수 7백20여 만 대로 잠정 집계되는 전세계 승강기 시장이 매년 평균 2%의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 중 아시아 지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 시점에서, 로프 브레이크 세계시장 또한 약 7천6백억원에 이르는 규모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로프 브레이크 관련 해외 규격은 미국·캐나다 승강기 검사기준인 ASME/ANSI 17.3, CAN/CSA B44-00, 유럽 승강기 검사기준 EN 81-1 등이 있다.
미국·캐나다 검사기준에서는 2.19. 상승방향의 카 과속과 제어되지 않는 카 작동시 보호(Ascending car overspeed and unintended car movement protection) 조항에 상승과속 방지장치, 비상 브레이크 등의 목적 및 요건, 기능, 지지물 등이 명시돼 있으며, 유럽 승강기 검사기준에서도 9.10. 상승하는 카의 과속방지 수단(Ascending car overspeed protection means) 조항에서 ▲과속상승 방지 ▲의도하지 않은 동작이나 개문발차 방지 ▲작동시 기존 구조물에 30% 이상의 스트레스를 부과하지 않을 것 ▲장치에 전원이 차단되면 승강기를 정지시키고 제동상태를 유지할 것 등을 자세히 규정하고 있다.

승강기·이용자 안전 지키는 ‘최후의 전사’
로프 브레이크는 ▲승강기 정격속도 130% 이상 초과시 급상승 또는 급하강할 경우 ▲문이 열린 채 승강기가 미끄러짐(Slip) 현상이 발생할 경우 ▲주행 중 정전 등의 이유로 전원이 차단된 후 제동능력이 상실했을 경우 ▲권상기 브레이크 라이닝 마모 및 오일 오염, 접점 융착 현상 등 제동기 불량일 경우 등의 상황이 발생하면, 카가 승강장에서 5백mm 이상 떠나기 전에 통제 불능한 이동을 감지하고 추가로 7백mm를 더 이동하기 전에 카를 완전히 정지시켜, 인명피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승강기의 최종적인 안전장치다. 승강기뿐만 아니라 탑승객의 안전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최후의 전사’인 셈이다.
국내 관련업체에서도 로프 브레이크의 최우선 순위는 ‘안전’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승강기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하는 제품이고 인명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부품이나 볼트 하나에도 최상급을 사용하고 수십 차례의 시범 테스트 검증을 마친 뒤 납품 완료단계를 거치는 등 업체 저마다의 ‘안전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
그러나 지난 2000년 설치 의무 법제화와 맞물려 관련업체들이 1999년 2~3개 업체에서 2004년 7~8개 업체로 늘어나, ‘한정된 파이’를 붙들고 기업윤리를 약속하면서 ‘상생의 길’을 걸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장이 커지면 우후죽순 격으로 업체가 생겨나고 이후 경쟁력있는 업체만이 살아남는 건 당연한 경제적 이치지만, 이로 인한 가격경쟁력 악화, 제품 품질 저하와 함께 선의의 경쟁보다는 ‘제 살 깎아먹는’ 경쟁, 소위 ‘진흙탕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견해다.
벌써부터 실수요자인 대기업을 비롯한 승강기 제조회사 등에 저가로 공급 가능한 보급형 제품을 개발, 납품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설치 의무화 초기인 2000년도에 2백만원을 상회하던 제품 단가가 이제는 1백만원대 이하로 떨어진 상태며 향후 가격 하한선이 얼마가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공급이 과잉되면 자연히 가격이 떨어지고 제품의 하자 발생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다”며, “실수요자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다 보니 이용자의 안전을 위시한 제품의 본질이 흐려진 면은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체들은 “현재 승강기 설치 단가가 지난 1988~1994년 당시보다 더 싸다”면서, “여기에 고가의 승강기 관련부품까지 가세한다면 국내 제조사들의 애로사항은 더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부품회사 입장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지속적인 가격하락으로 어느 정도의 선에 이르면 업체는 더 이상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승강기 자체에는 한달 5백~7백대 생산 기준으로 월 3억5천만원, 연간 40여 억원에 이르는 원가절감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일부 업체는 가격의 상향조정을 발표했지만 업체 대부분은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저가공급 마케팅 전략에 열을 올릴 계획이다.
현재 로프 브레이크는 완성검사 시 대부분 검사기관의 현장검사가 행해지지만 현장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설계서나 공인기관 시험성적서로 대체 확인을 하고 있다.
검사기관에서는 완성검사 시 안전에 지장은 없지만 미비한 사항이 있을 경우 보완으로 조치가 취해져 시정기한을 정해주고 있으며 안전부분에 문제가 지적될 경우에는 불합격 처리로 최초 접수단계부터 다시 시행되고 있다. 양방향 가바너나 더블 브레이크, 로프 브레이크 등 종류별 검사항목은 같고 승강기 손상 정도를 감안해 고속보다는 수동상태의 저속시험으로 검사하고 있다.
그러나 품질인증인 Q마크가 있으면 검사필증이 나오기도 하고 현장검사 또한 정상속도, 개문발차 시험 외에 과속시험은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업체들의 입장이다. 이에 검사기관 한 관계자는 “양방향 가바너나 더블 브레이크 같은 경우는 사후복귀의 문제점, 까다로운 건물주의 반대 등으로 현장확인이 어려워 생략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로프 브레이크는 거의 100% 현장확인이 가능한 편”이라고 말했다.

형식적 검사·명목상 인증 등의 문제 선결돼야
그렇다면 현장확인을 대신하고 있다는 품질인증서는 과연 이용자의 안전을 완벽하게 지켜줄 만큼의 성적표가 되고 있는가가 의문이다. 물론 시험성적 및 테스트 항목이 정해져 있어 일정수치를 넘기면 ‘합격의 반열’에 들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상의 문제점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관련업체 관계자는 “인증기관에 소요되는 비용이 전체 비용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테스트 타워나 실험장비가 준비된 상태도 아니면서 접수비부터 검사비, 교육비, 실험비는 다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품질인증으로 품질에 하자 없고 법제화로 법적인 하자도 없기 때문에 설치 후 완성검사를 마치고 작동이 불분명하면 전원을 차단하고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사용하더라도 제동이 잘 걸리지 않아 설치된 제품이 다시 반품되는 등 형식적인 품질인증과 안전의식 성장이 미쳐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설치 의무 제도로 현재 승강기는 곤혹을 치루고 있다.
로프 브레이크라는 승강기 안전 제동장치가 이제는 2만개 부품으로 조합된 승강기의 필수불가결한 하나의 요소로 자리매김했다는 데에는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를 부정적 관점보다는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관련업체 또한 최고의 품질과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품질인증서라는 액자 속에 박힌 의미없는 서류와 설치 의무화를 악이용한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이 시장을 더 이상 이끌어 갈 수 없다. 애매모호하고 산만한 법률 조항의 확실성 부여와 아직은 법에서 제외돼 있는 기존 승강기를 포함하는 관련법 개정, 실효성있는 품질인증제도와 검사제도 시행 등이 선행될 때 이용자의 안전과 수요자·공급자가 공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