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검사기준 불합리 요소 많아, 개정해도 시일 촉박
게재월 : 2002년 8월호

서울 노원구 소재의 한 도서관에서는 장애인 편의를 위해 큰 맘먹고(?) 기존 설치돼 있던 덤웨이터를 철거하고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했다. 그러나 휠체어리프트가 지난해 ‘승강기제조및관리에관한법(이하 승관법)’ 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승강기의 종류에 포함되자, 개정 검사기준에 맞춰 완성검사를 실시한 결과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빼곡한 불합격 항목에 기가 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결국 이 도서관은 휠체어리프트를 철거해 버리고 예전 덤웨이터를 다시 설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예는 또 있다. 장애인이 있는 한 가정에서 편의를 위해 장애인용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했지만 승관법에 따라 완성검사, 자체검사, 정기검사, 운행관리자의 선임과 교육 등의 의무사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 문제였다. 이에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하 관리원)에 “어떻게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느냐”고 문의했지만 답은 당연히 “안된다”였고, 승강기 관련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의뢰인은 결국 “적법한 절차를 거쳐 사용하지 않으면 각종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육지책에 동의하고 그 절차를 밟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애써 돈 들여 설치한 시설을 법에 가로막혀 사용도 못하고 만 어처구니 없는 예가 아닐 수 없다.

법개정시 의견수렴 미흡, 일방적 개정
앞서 제시한 두가지 실례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법규와 까다로운 검사기준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로 더이상 장애인 편의시설이 이 땅에 설 땅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가? 문제의 발단은 무엇이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문제의 발단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2001. 1. 22)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을 주축으로 각급 장애인 단체들이 그간 전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휠체어리프트 관련사고를 외면하고 방치해온 보건복지부 등 정부당국의 무책임성을 폭로하며 4백50만 장애인의 ‘최소한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휠체어리프트 안전기준 마련과 검사 및 보수점검을 의무화하는 법개정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다.
당시 장애인 단체의 거센 압박과 승강기 관련 일부 전문가들이 설치 휠체어리프트 대상시설 및 높이제한을 없애고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편승, 결국 당시 현장 검사와는 애초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법정 안전검사기준도 아닌 제품규격인 ISO 9386-1과 9386-2을 그대로 번역·적용해 승관법 시행규칙을 개정(2001. 4.18 산업자원부령 제124호)하고 휠체어리프트 검사기준을 급조해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장애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또다른 피해자가 되어 버렸고, 시간과 압력에 쫓긴 정부당국은 행정편의적 법 적용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상실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업계 일각에서는 “더 큰 문제는 당시 ISO 규격도 완성판이 아닌 초안 상태였던 과도기적 내용을 담고 있어 신판 ISO에는 누락된 내용도 많다”는 점을 들어 비현실적인 검사기준 마련에 거세게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국내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마련된 것도 아니고 장애인 단체의 반발에 밀려 ‘선진외국 기준이라면 무조건 믿을 수 있고 좋다’는 식의 얄팍한 사고로 충분한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비싼 용역비를 들여 번역작업으로만 기준을 마련한 것은 국민혈세의 낭비”라는 지적도 면할 수 없는 처지다.

경과조치 소급적용, 검사기준도 비현실적
현재 법규상 승관법 시행규칙 개정 당시 부칙(2001. 4. 18)에 “①(시행일) 이 규칙은 공포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와 “②(휠체어리프트의 완성검사에 관한 경과조치) 이 규칙 시행전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이 규칙 시행 후 1년 이내에 법 제13조제1항제1호의 규정에 의한 완성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어 기 설치돼 운행하고 있는 휠체어리프트까지 소급해 오는 10월 18일까지 완성검사를 모두 받아야할 의무가 주어져 있는 상태다.
관리원이 파악하고 있는 휠체어리프트 대수는 전국적으로 대략 1천5백여대. 이러한 수치는 경사형과 수직형을 합쳐 각 시군구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관리원 각 지원에서 파악된 수치를 합산한 것으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이 설치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애인용 휠체어리프트 제작사들은 이보다 많은 1천7~8백여대 정도로 보고 있다.
이들 휠체어리프트는 모두 오는 10월 18일까지 완성검사를 검수해야하는데 문제는 이 중 과연 얼마나 합격할 수 있느냐다. 모 검사기관 관계자는 전체중 거의 전부랄 수 있는 95%는 불합격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귀띔한다.
검사기관 입장이야 법대로, 기준대로 검사만 하면 된다. 해서 기준과 맞지 않으면 ‘불합격’처리 하면 그만이다. 문제는 불합격 통보를 보고받은 시군구에서 해당 휠체어리프트의 운행정지 명령을 내리면 “그 때는 과연 누가 책임질 것인가?”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그 때 가서 또다시 불같이 일어날 장애인 단체의 거센 항의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결국은 무용지물인 1천5백여대의 휠체어리프트에 대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정치계나 경제계에서나 들어봄직한 ‘대란(大亂)’을 예고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에 정부당국과 관련 업계 및 검사기관 등은 심각한 우려와 함께 대책마련을 내심 요구하고 있는 실정.

개정시 시간과 예산확보도 고려해야
관리원에서 발간한 책자 ‘휠체어리프트 검사기준’만 해도 1백47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항목들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세히 뜯어보면 불합리한 내용도 상당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기준항목 10.1.5에 따르면 “시험, 인수인계, 검사 또는 운전에 따른 모든 증명서의 사본은 적어도 10년 동안 제공자에 의해 파일로 보관되어야 하며, 요청시 구매자 또는 그 대리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과연 이 내용이 현실을 조금이라도 염두해두고 검사를 하라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검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를 수많은 기준에 맞춰 오는 10월 18일가지 개선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말로 현 상황인식을 대변했다. 이와 같은 인식은 현재 기술표준원(이하 기표원)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표원 제품안전과 관계자의 말을 빌면 “당시 ISO 기준 등 무리하게 번역한 결과 우리 실정에 맞지 않다”고 인정하고 “관련 검사기준 개정작업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시행규칙에 정해진 10월 18일까지 시일이 촉박한 것에 대해서는 “시기적으로 공고와 동시에 시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휠체어리프트를 제작하는 모 업체 대표도 “안전하게 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검사기준 개정 당시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당시 ISO 기준을 가져다 안전검사기준으로 삼은 것은 말도 안된다”며, “검사기준이 개정된 작년의 경우 철도청이나 지하철공사 등이 예산확보조차 안돼 있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 향후 개정기준은 시간과 예산이 확보 가능성 여부를 염두해두고 현실성 있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작업이 제대로 될려면 “단시간 내 개정해봤자 이후 전반적으로 검사기준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우선 지난 1년간의 유예기간 동안은 차치하더라도 업계나 검사기관 등에서 기술적으로 보완 및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안전검사기준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할 것이다.
아울러 또 한가지 염두해둬야 할 것이 있다. 서두에 사례로 소개한 것과 같이 승관법 및 검사기준이 예외 없이 일괄 적용된다는 것도 문제라는 사실이다.

장애인에게 승관법 무차별 적용은 무리
승관법 자체의 입법취지가 승강기의 제조, 설치 및 보수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승강기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승강기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승강기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면 이는 “검사기준 강화가 안전확보로 곧바로 직결된다”는 식의 딱딱한 사고는 장애인이라는 특수한 환경의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휠체어리프트의 경우 접근방법에 있어서 그 의미가 다소 미흡하다. “검사기준에 어긋나서 사고가 난 것 아니다. 기준에 맞춰도 사고는 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
현행 휠체어리프트 검사기준은 개정 당시 오이도역 사고로 인한 장애인 단체의 거센 목소리에 밀려 지하철 리프트만 고려했지 일반 가정에서도 얼마든지 설치해 사용할 수 있는 휠체어리프트를 염두하지 못한 오류를 범했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형편이 좋지 않은 것도 그렇지만 내 돈 들여 가정에 생활편리를 위해 리프트를 설치하려 해도 이것 저것 관섭받는 규제가 무서워 설치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아무리 보건복지부에서 산업자원부로 소관업무가 떠맡겨지듯 했다 하더라도 장애인 편의시설이란 원래의 개념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
이는 일종의 족쇄인 ‘법’을 너무 쉽게 생각한 장애인 단체들에게도 문제였고, 사고발생에 의한 문책과 질타를 회피할 방안만 찾다 ‘말도 안되는’ 기준을 마련한 정부도 책임이 있는 부분이다. 결국 장애인들만 자신들이 누려야할 편리, 자신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법규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나 제도적 피해자가 돼 버린 것이다.
이제는 장애인들도 더이상 휠체어리프트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기계’라며 철거할 것과 이를 대신해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이든 검사기준 개정이든 장애인들의 편이를 충분히 고려한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며, 4m 이상의 경우 휠체어리프트보다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설치를 적극 권장하도록 힘써 불필요한 사회적 반목을 줄여야 한다. 또한 오는 10월을 앞두고 휠체어리프트 관련 검사기준이 제때에 개정된다면 소급적용되는 물량에 대해서는 검사기준 중 필수적인 항목들만 추려서 최소한의 검사로 실질적인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관계기관에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때론 비판도 많았고, 문제도 많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 땅에서 10년 세월동안 정착해왔고 발전해온 승관법이다. 그 안에 정부와 검사기관, 업계가 쏟아부은 노고도 무시못하는 만큼 좀더 나은 승관법으로 다듬는데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다.■글·박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