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승강기 보조안전장치 15층이하 확대 ‘보류’
게재월 ; 2003년 4월호

상승방향 과속 및 개문발차 방지장치 등 승강기 보조안전장치의 설치의무 대상을 현재의 16층 이상 공동주택 및 다중이용 건축물에서 15층 이하의 모든 건축물에 확대·적용키로 한 산업자원부장관 신국환(www.mocie.go.kr, 이하 산자부)의 승강기검사기준 개정안이 사실상 보류됐다.
지난달 5일 규제개혁위원회(www.rrc.go.kr, 이하 규제개혁위)가 정부종합청사에서 경제1분과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승강기검사기준고시개정안’에 대한 규제 심사를 벌이고 산자부의 신설규제에 대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규제개혁위는 “규제를 신설·강화할 때는 행정규제기본법상의 규제영향분석, 자체규제심사, 규제개혁위의 규제심사 등 절차를 거쳐야 했음에도 현행규제를 당초 도입할 때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기술표준원에서 임의로 규제를 도입하고 그 후 강화해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해당 사안은 현행규제의 타당성 및 존폐여부에 대한 규제심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며, 규제비용이 연간 1백억원 이상으로 중요규제에 해당하는 만큼 규제개혁위 본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에서 해당 검사기준 개정안의 규제심사를 보류하고 현행규제부터 다시 일정기간(3개월) 내에 신설규제에 준하여 규제심사를 거치도록 권고했다.

안전을 규제완화의 대상으로 봐서야…
이같은 규제개혁위의 결정을 둘러싸고 시야 비야 말들이 많다. 결국 규제개혁위의 이번 심사보류 결정은 정부 소관부처간 행정절차에 대한 이견과 1백억이라는 규제비용, 즉 “비용부담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이용자인 국민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보는 견해가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한편에서는 “대구 지하철 화재로 인한 참사를 겪고서도 또한 새정부가 들어섰어도 변함없이 ‘안전’을 규제완화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한심하다”고 애써 외면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올들어 유난히 승강기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고 대부분 중상 및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 인명피해가 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또, 규제개혁위가 심사보류를 결정토록 한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업계현실을 무시하고 원론에 치우쳐 있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이번 규제심사안 자료에 따르면 “기술표준원은 현행규제가 16층 이상의 공동주택 및 다중이용시설에만 적용되고 있어 15층 이하 일반 건축물과의 안전 형평성상 불합리한 점을 이유를 들어 규제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어 이번에 현행규제 및 규제강화에 대해 일괄심의하여 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선진외국과의 사고발생 현황 및 유지보수 관련 규제의 비교, 관련사고에 대한 세부원인분석, 유럽식과 미국식에 대한 세부기술 검토 등 규제심사에 필요한 자료가 없는 현 상태에서 15층 이하 일반 건축물과의 안전 형평성만을 근거로 중요규제의 존치여부 및 규제강화 타당성을 심사하는 것은 부적정하다”는 것이 규제개혁위의 판단이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선진외국의 안전기준은 그 나라의 오랜 시행착오와 서비스 환경에서 몇십년간 쌓아온 경험의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내에서 엄연히 발생하는 사고가 선진국보다 적을 리가 없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상식임에도 우리의 현실을 굳이 외국의 잣대로 가늠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기술표준원이 규제심사 때 제출한 승강기 관련 사고현황을 살펴보면 기 설치돼 운행중인 19만9천5백7대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만 지난 10년 사이 1백47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이 중 14건이 개문발차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비율은 총 안전사고 1백47건 중 15층 이하 1백30건(88.4%), 16층 이상 17건(11.6%)으로 대부분 15층 이하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작년 산자부 국정감사 발표자료에 의하면 2001년 승강기 사고로 인한 119구조대의 총 출동건수만 4천3백89건에 구조인원은 1만3백90명이었으며, 이는 119구조대 전체 출동건수의 5%, 전체 구조인원의 14.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렇듯 국민들이 승강기로 인해 입는 피해사례는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서 파악하고 있는 인명피해 수치를 훨씬 뛰어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안전사고에 대한 세부적 원인분석을 하려 해도 특정 업체 및 단체가 하기에는 한계점도 많고 또 여력도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더군다나 3개월이란 보류기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염두해둬야 할 것이다.
결국 현재와 달라질 것 하나 없는 상태에서 현행규제를 다시 심사해봐야 얻을 것이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 사이에도 얼마든지 전국 곳곳에서 사고의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며, 우리 주위의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것뿐.
물론 작년 11월 28일 기술표준원이 주최한 관련 공청회에서도 드러났듯이 산자부의 승강기 검사기준 고시안에 대한 각계의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 승강기 관련단체에서는 사고의 실질원인에 대한 분석 등이 선행되어야 하며, 현재의 안전장치의 성능을 2단계로 개선한다든지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 사고도 막을 뿐더러 경제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근본적인 승강기 안전확보를 위해서는 보수업체 난립과 과다경쟁에 따른 부실 보수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추가 안전장치가 특정 업체의 제품을 지정한 것이 아니며, 승강기 검사기준에 적합한 기능을 갖춘 제품이면 누구나 개발, 제조 및 판매가 가능한 만큼 시장경쟁을 제한하는 요소가 없다”는 것이 기술표준원의 입장이라면 양방향 과속방지장치 등과 같이 관련 단체에서 내놓은 대안제품을 기술적으로 검증해 얼마든지 사용하면 그만이지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 규제가 도입된 지 벌써 4년째다. 업계에서 해당 규제에 맞는 제품을 선보여도 10개는 나왔음직한 시간이었다. 정부 소관부처나 업계는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이 교과서적 원론이거나 기업의 손익계산서 분기점에 발가벗겨진 채로 걸린 ‘안전’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글 : 박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