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간 지하철 한역사 내 사고만 30여 건에 달해
현시점…‘폭풍전야’, 묵과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게재년월 : 2005년 7월호

지난달 12일 서울 코엑스에서는 중학생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다 발이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앞서 11일 부산 김해공항에서는 여아(6)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오른손이 에스컬레이터 상층 콤 끝부분에 끼여 네번째 손가락이 절단되고 새끼 손가락이 심하게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에 기 등록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총 2백40건의 안전사고 중 에스컬레이터 관련사고가 52건으로 전체의 21.6%를 차지하고 있어 심각한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사실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에 비해 70~80%의 높은 수송효율을 보이면서도 전체 승강기 설치물량 중 약 5%(2005년 3월말 기준, 현 설치대수 1만1천1백72대)의 작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어, 안전성·신뢰성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또 지난해부터 국내 메이커사가 에스컬레이터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등 대부분의 회사가 중국산을 설치함에 따라 무차별적인 불량부품 도입과 저가 수입 등으로 안전에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 외에도 용도별 설계기준의 일괄 적용, 현 제도상 안전기준의 취약성, 검사기관의 미약한 안전홍보, 건물 소유주의 낮은 안전의식과 가격우선주의 등이 총체적으로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실제 발생하는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 빈도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상회하고 있다는 것.
이는 이용자 측에서 사고의 경미성으로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검사기관, 건물주, 보수업체의 실리에 따라 은폐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지난 2월 제주 이마트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처럼 노출된 안전사고라도 이용자 과실을 앞세워 피해보상에 미온적인 입장을 표명한 경우도 있어 제2, 3의 피해는 지금 이 시각에도 대기중이다.

기존 에스컬레이터 안전통계, 누락 많다
서울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김찬웅 응급의학과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7개월간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로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는 약 30여 건에 달하며 4월 한달만도 8명에 육박했다”며 “이는 검사기관이나 지하철공사, 도시철도공사가 발표한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 통계와 비교해 볼 때 터무니 없이 높은 수치”임을 밝혔다.
실제로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발표한 지난 10년간 에스컬레이터 사고는 52건에 불과하며 지하철공사 또한 5년간 50여 건으로 집계돼, 관심 밖으로 사라지거나 덮어지는 사고가 많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김 과장이 응급학회지 6월호에 게재한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외상의 유형에 대한 분석(A Clinical Analysis of Trauma Pattern in Subway Station)’ 논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00년 3월부터 2005년 3월까지 5년동안 용산역, 남영역 등 인근 지하철 역사에서 사고가 발생해 응급실로 실려오는 환자 39명의 의무기록과 119 구급활동 일지를 후향적으로 검토해 분석한 결과, 전체 환자 중 에스컬레이터 이용 시 균형을 잃으면서 손상당한 환자는 13명(전체의 1/3)에 달했다.
환자 발생을 시기별로 분석해보면 2000년 3명, 2001, 2002년에는 2명씩을 보이다가 2003년에 3명, 2004년에 29명으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용산역에서 발생한 환자가 2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김 과장은 ”이는 지난해 9월 용산역과 연계된 복합 쇼핑몰(스페이스 9)의 개장과 맞물려 급작스런 유동인구 증가로 에스컬레이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환자수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용산역에서의 에스컬레이터 사고 환자는 11명으로 60세 이상의 연령층이 대부분을 차지해, 균형감각이 취약한 고령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에 관한 이전의 연구논문을 살펴보면 소아의 손상 대상이 대부분이고 노인 손상에 대한 보고서는 거의 없다.
소아 손상은 핸드레일을 잡지 않거나 탑승 후 뛰거나 장난하는 등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계단에서 구른 경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릴 때 손상을 입은 경우 등 소아의 이용행태를 보완하는 안전조치 권고가 주요 요지다.
권고 내용은 반드시 보호자와 동행토록 하고 적절한 신발을 착용하며 이동시 부적절한 움직임을 제한하고 핸드레일을 잡도록 하는 등이다.
그러나 고령 이용자들은 소아와는 달리 장난이나 놀이처럼 부적절한 행동도 하지도 않고 신발, 의류의 일부가 말려 들어가서 발생한 사고도 없다. 대부분 에스컬레이터 진입 초기에 균형을 잃으면서 다치기 때문에 고령 이용자들의 부주의나 잘못된 이용형태에 대한 개선보다는 에스컬레이터 및 그 주위환경 개선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에스컬레이터 자체 위험성 높다
김 과장은 “에스컬레이터 디딤판에 발을 올려놓을 때 최초 진입이 평지와 동일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므로 고령 이용자들은 일반적인 보행감각으로 에스컬레이터의 첫 디딤판에 무게 중심을 이동하게 되고 신체 또한 기존의 수평이동에 적응되어 있다”며 “그러나 디딤판은 일정한 속도와 고도의 차이로 사선방향으로 이동하므로 이 위치와 속도감의 변화가 생리적으로 변화에 둔감한 고령 이용자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라서 지하철 역사를 이용하는 고령의 이용자는 에스컬레이터와 같은 사선 방향 이동수단보다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수직방향 이동수단이 더 안전할 것이며, 기존의 에스컬레이터에 대해 장기적으로 이와같은 특성을 고려한 공학적 차원의 설계 변경까지도 검토해야 할 것”임을 덧붙혔다.
현재 검사기관의 사고원인별 안전사고 통계를 살펴보면 건물용도별로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매장이, 사고원인별로는 ‘이용자 과실(부주의)’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철도청, 관공서 등 관급에서 요구하는 에스컬레이터 수주물량이 급증하면서 지하철 역사가 안전사고의 안전지대가 아닌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
또 검사기관 및 보수업체가 일순위로 강조하는 ‘이용자 과실’이 사고 원인의 하나는 되겠지만 앞서 살펴본 논문에서처럼 고령 이용자의 에스컬레이터 사고 손상은 그 원인이 이용자에게 있다기 보다는 에스컬레이터라는 시설물 자체의 위험성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이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어린이 안전사고 또한 보호자 동승만을 강조하는데 어른들이 에스컬레이터를 계단으로 인식하고 동일시하는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있어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절실하다.
업계 한 전문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에 비해 구조상 250~300% 이상의 위험성이 내재된 기계로 엘리베이터에 비해 10배 이상의 높은 안전사고가 발생한다. 다만 그 사고가 찢어지거나 찰과상 등 경미해서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업계 전체가 이를 계속 묵과한다면 언젠가는 대형사고로 이어져 이용자들의 호된 질타를 면치 못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현재 전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총 1만1천여 대로 연간 1천여 대의 성장률을 보이다가 최근 철도청의 집중적인 물량으로 연간 1천2백대~1천4백대의 설치대수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향후 교체시장의 활성화와 판매시설 증대, 지하철 역사 내 설치 의무화 등으로 에스컬레이터 물량 증대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종의 공중증(恐中症)에 걸리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당 5천6백~6천만원을 유지했던 에스컬레이터(4.5~5미터, 1미터 폭, 경사각 30도 기준) 단가가 올해 들어 4천만원대로 하락했고, 단체수계가 폐지돼 최저가 입찰제로 변환되면서 가격경쟁은 더욱 더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품질 하락으로 인한 기기의 잦은 결함은 필연적 귀결이 되고 있다.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최근 5년간 집계한 에스컬레이터 정기검사 항목별 부적합 현황을 살펴보면, ‘디딤판과 상하 승강장의 물림상태 불량’이 4백91대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스커드가드와 디딤판과의 틈새 규정치(한쪽 4mm 이내, 양쪽 7mm 이내) 미달 또는 초과(2백90대) ▲구동체인 절단정지 및 제동장치 설치상태 불량(1백82대) ▲3각부의 막는 조치 안됨(1백69대) ▲3각부 안전보호판 미설치(1백45대) 등으로 나타났다.

안전사고 발생시 책임소지 명확화 필요
이 외에도 검사기관과 보수업계의 허술한 유지보수 체계와 EN코드 및 ASME와 같은 국제표준 대비 미흡한 안전기준, 에스컬레이터 한줄타기 운동의 대중화 등도 기기 결함의 한 요인으로 일조하고 있다.
이중 비효율적인 한줄타기 운동은 단순한 하중이 아닌 걷거나 뛰어가는 충격량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프레임과 스텝이 한 방향으로 휜다거나 체인의 늘어짐, 바퀴 손상 등으로 빈번한 고장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각 기관, 업체들의 에스컬레이터 안전사고 덮어두기식에 대한 책임소지 명확화와 함께 업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부분 리콜제 도입 검토다.
지난 2월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딜라드는 쇼핑 도중 에스컬레이터에 끼인 신발을 꺼내려다 오른손 손가락 3개를 잃은 피해자(7) 측과 2년간의 재판 끝에 1천5백만 달러(1백54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으며, 지난 4월 서울 H 백화점 점장 정모씨와 총무부 차장은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손가락에 중상을 입은 어린이에게 각각 벌금 3백만원씩을 지불했던 사례에서처럼 건물 관리주체의 책임 소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검사기관과 보수업체 또한 이제 면피가 아닌 책임의식을 갖춰야 할 때다. 이는 이달부터 적용되는 사고보고 체계 의무화와 산자부 직속으로 편재된 사고조사판정위원회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봄 직 하나, 그동안의 업계 관행상 원활한 적용과 활동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동일한 맥락에서 부분 리콜제 도입은 단순히 신뢰성 상실이 아닌 이용자와의 격차를 좁히는 초석 마련이라는 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또한 오는 2019년이면 국내 노인인구 비율이 14.4%에 이르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고령 이용자들을 배려한 엘리베이터나 계단 등의 동선 배치와 함께 안전한 이용을 위한 교육방법 개발 또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상업적 목적과 결합해 거대화되는 지하철 역사의 경우 뒤따를 외상의 발생을 충분히 예상하고 안전요원을 상시 배치한다거나 연령과 용도에 따른 별도의 설계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실질적인 대안책을 마련하는 시각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글 : 신영주 기자 / yjshin@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