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행정’인가, ‘구조상 불가피’인가
장애인단체, 우리는 ‘생존의 동선’이 요구될 뿐이다!
게재년월 : 2005년 9월호

지난달 5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열린 신형 장애인 휠체어리프트 시승식이 장애인단체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는 승강기 검사기관, 지하철 운영기관, 장애인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시 관계자가 리프트 설치사유에 대해 설명하던 중 장애인이동권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가 “휠체어리프트 이용은 장애인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면서 “잦은 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리프트 사고에 대해 서울시는 단 한번도 책임진 적이 없다”며 시승식을 거부하면서 발생했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시승식을 계속 진행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동권연대는 ▲2004년 말까지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 불이행 ▲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한 서울시의 책임과 공식사과 ▲보건복지부, 지하철건설본부, 편의시설 전문가의 재조사 결과와 장애인 단체의 재조사 거부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박 대표는 “지하철 역사의 편의시설은 장애인들에게는 생존권 문제”라며 “국가공공건물인 46개 역사의 승강편의시설 재조사를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에게 직접 조사하라는 서울시의 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할 것을 계획했으나 보도폭 및 승강장폭의 협소, 지하철역사 구조물 특성 등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는 46개 역사를 대상으로, 엘리베이터 대신 기존 휠체어리프트보다 면적이 넓고 안전대가 장착된 리프트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신삼수 본부장은 “지난 2002년부터 지하철 전 역사에 총 3천억원을 투자해 승강편의시설 설치를 추진하고 있으며 올해 7월 현재 지하철 2백62개 정거장에 설치된 승강편의시설은 2천2백27대에 이른다”며 “향후 계획 중인 시설은 총 8백10대로 이중 휠체어리프트는 97대로 현재까지 57대가 설치완료된 상태”임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편의시설 전문가, 장애인단체 대표 등이 문제의 소지가 있는 46개 현장을 중심으로 서울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현장점검에 나설 것을 약속받은 후에야 종결됐다.
지하철 휠체어리프트 설치의 원론적 문제 제기와 이에 대한 장애인단체들의 큰 반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9년 혜화역과 천호역 리프트 추락사고에 이어 2001년 오이도역에서의 사망사고로 휠체어리프트 관련법이 제정됐지만, 이후에도 충무로역, 발산역 등에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휠체어리프트 설치에 대한 재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신형 휠체어리프트를 설치한 현장 계약이 물의를 빚고 있어 문제는 더욱 불거지고 있다. 지난 3월 조달청이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이사장 최종관, 이하 승강기조합)에 단체수의계약 물량으로 휠체어리프트 97대를 발주했으나, 제대로 시설도 갖추지 않고 생산경험조차 없는 조합업체 8~9개사에 나눠먹기식으로 비밀리에 배정해 검증 안된 제품이 지하철 역사 내 설치된 것.
특히 이 업체들은 단체수의계약 운용규칙 법률 제21조를 위반하면서 하청이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리프트 레일(주행로) 등을 하청공장에서 생산토록 했으며 생산경험이 전무한데도 실적을 허위로 조작해 장애인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시, 예산문제로 휠체어리프트 ‘선호’
장애인권익지킴이 박종태 씨는 “휠체어리프트만 보면 충분히 제작할 수 있다는 한 업체 사장의 태연한 발언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며 “도대체 언제까지 장애인이 업체와 기관들의 실험도구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답답하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또 “이런 사실을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보복부나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 등 관련기관들이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 모른채 덮어두고 넘어가는 부분도 납득이 안간다”고 말했다.
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 또한 “휠체어리프트는 승강편의시설이 아닌 장애인을 또 한번 죽이는 무기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투쟁은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는 내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다. 기존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경우 역마다 구조에 따라 2~4대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는 게 도시철도공사 관계자의 말이다.
3~4대를 설치할 경우 소요되는 비용은 10억원대로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수백억~수천억원의 비용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반면 휠체어리프트는 대당 가격이 2천5백만~3천만원 수준에 불과하고 기존역에 설치하기도 편해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는 46개 역사에 대해 보도폭과 승강장폭의 협소로 인해 승강기 설치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폭 1.4m, 깊이 1.4m의 승강기를 설치할 경우 지상에 필요한 땅은 가로 3m, 세로 3m. 보도의 유효폭은 2m이므로 총 너비 5m 이상일 경우에만 승강기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의 편의시설의 구조ㆍ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에 따르면 “승강기 내부의 유효바닥면적은 폭 1.1m 이상, 깊이 1.35m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보도 또는 접근로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이 기준으로 승강기를 설치할 경우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가 제시한 안에 비해 필요한 도로너비를 최소 0.85m, 최대 1.1m 줄일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만 따르더라도 어느정도 승강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2005년 3월 현재 전국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총 2천2백51대(경사형 2천1백3대, 수직형 78대)로 전체 승강기 30만3천7백2대의 약 0.7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지하철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만도 4백34대로 전체 리프트의 19.2%를 점유하고 있다. 향후 설치될 물량까지 계산하면 약 23.5%(5백31대)를 육박할 전망이다.
이제 휠체어리프트의 불합리한 설계와 설치, 그리고 업계의 잇속 챙기기로 인해 빈번히 발생하는 장애인들의 안전사고를 더 이상 좌시할 수만은 없다. 사고의 책임 한계선을 명확히 그어야 할 것이며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를 비롯한 관련기관 또한 두 손 놓고 먼산 불구경만 해서는 안된다.
지난 7월에는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질의를 통해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이 장애인 시설, 휠체어리프트 시설 등의 현장시찰 등 보복부의 적극적 정책 노력을 주문했으며, 열린우리당 장경수 의원은 휠체어리프트의 위험성을 인지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그대로 추진한 보복부와 서울시를 지탄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루 속히 46개 지하철 역사 현장의 면밀한 재점검을 통해 덩치만 커진 휠체어리프트의 위해성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전동 스쿠터를 감당할 수 있는 휠체어리프트가 아니라 마음놓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생존의 동선’이기 때문이다.
■글 : 신영주 기자 / yjshin@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