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폐지론 VS 유지론, 3시간의 ‘혈투’
게재년월 : 2004년 9월호

지난달 24일 과천정부청사 기술표준원 대강당에서는 현재 쟁점이 가속화되고 있는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한 개편 공청회가 관련기관 및 중소기업 업계의 초미의 관심 속에서 개최됐다.
애초 이 공청회는 지난 7월 30일 양재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주최측의 준비 미흡과 중소업계의 과도한 반론 등으로 취소됐었다. 이에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은 중소기업 전국조합 및 대학교수, NGO, 연구소 공무원, 경제단체 등을 대상으로 제도에 대한 관련업계 의견 수렴 및 개선 방안을 위한 자리를 다시금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에서 다 정해놓고 업계 잡음을 막으려고 하는 전시성 행사가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건국대학교 최정표 교수로 진행된 이번 공청회는 중기청 이기우 기업성장지원국장의 단체수의계약제도 운영현황 및 문제점 그리고 개편방향 등을 중점으로 한 발제 이후, 2시간에 걸쳐 열띤 패널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날 참석한 토론자들은 중기청 이기우 기업성장지원국장을 비롯해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연구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김태형 단체과장 ▲산업연구원 김홍석 부연구위원 ▲한국정보통신공업협동조합 주대철 이사장 ▲(주)하재 이수묵 대표 등 총 6명. 이들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한 개편과 폐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서 뜨거운 공방전을 펼쳤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기우 국장은 현행 단체수의계약제도의 문제점을 ▲경쟁제한적 성격에 따른 신규진입 제한 및 경쟁력 약화 ▲장기 지정에 따른 경쟁력 강화 노력 미흡 ▲제도운영 목적의 구체성 미흡 ▲참여조합의 적격성 판단기준 미흡 ▲물품지정의 비합리성 ▲조합과 납품기업의 불공정한 행위 및 사후관리 미흡 ▲부당비용 징수 등 기타 규정 위반 등으로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은 개편방향을 제시했다.

“개선이 아닌 폐지를 위한 공청회?”
중기청에서 발표한 단체수의계약제도 개편 방향을 살펴보면 ▲중소기업간 경쟁제도 도입 ▲과당경쟁의 방지 및 영세 한계기업 보호 ▲중소기업자의 수주기회 확대 ▲공공기관 중소기업 제품 우선구매의 이행력 확보 ▲조합기능의 활성화 ▲유사 수의계약제도 운영의 투명화 ▲중소기업 DB 구축·운영 및 벌칙제도 도입 ▲유예기간 설정 및 관련법령 개정 등이다.
특히 중소기업간 경쟁제도는 단체수의계약제도를 폐지하고 현행 계약 품목은 중소기업자간 경쟁품목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대기업 및 외국제품 경쟁 참여는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중소기업 직접생산 제품 판정기준’을 제정해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이 국장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한 문제점 보완을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이에 대한 보완시책을 꾸준히 개발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면서, “현행 단체수의계약 품목을 중소기업자간 경쟁품목으로 전환하고 등급별 경쟁제도 및 저가입찰 가격조사 제도를 도입해 영세기업을 보호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국장의 이와같은 발언은 장내를 술렁이게 했고 급기야 방청석에서는 “오늘 공청회는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를 위한 공청회가 아니라 개선을 위한 공청회임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며 목소리를 높혔다. 이 날 공청회는 시종일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해 정부기관의 폐지론과 중소업계의 보완론이 팽팽히 맞서는 대결구도의 양상을 띄었다.
단체수의계약제도는 1965년 대기업 위주의 압축성장 시대에 중소기업 보호 차원에서 도입, 공공기관이 수요물품의 구매 시 그 물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협동조합과 우선적으로 수의계약으로 구매하는 제도로, 1981년 ‘중소기업제품구매촉진에관한법률’이 제정된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실시됐다.

중기청 VS 중소업계, ‘집단 혈투극’
참여업체수 또한 1983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기 시작해 1999년 1만3천여 업체, 2003년 약 1만3천여 업체에 도달, 종업원 5인 이상 제조업체 중 12%를 점유하기에 이르렀다. 물품품목수는 1965년 1백81개에서 1983년 1천4백74개로 증가 후, 지난해에는 1백46개, 올해는 1백38개로 감소해 전반적으로 축소 추세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품실적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1988년 1조원, 1992년 2조원, 1994년 3조원, 지난해에는 4조8천9백억원에 이르고 있다. 이 중 상위 10대 조합의 납품실적은 약 3조2천억원으로 전체의 66.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레미콘조합 22.8%, 아스콘조합 10.8%, 전기조합 6.8% 등 3개 조합이 전체의 46.5%를 점유하고 있다.
단체수의계약제도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은 장기 물품지정에 따른 경쟁력 강화 노력 부족이다. 1990년 이전의 지정물품은 1백1개로 전체의 73.2%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 이후의 지정물품은 37개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일단 지정되면 규칙위반 등 제도 운영상의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한, 계속 지정(평균 18.3년, 최대 39년)되어 제도 내 안주함으로써 경쟁력 확보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지정물품에 대한 납품금액 상한선이 없어 물품별 납품실적이 큰 편차를 보이는 것 또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어, 제도 본래 취지인 영세한 다수 중소기업의 판로안정 및 협동조합 활성화 등을 위한 적정 지원규모에 의문 제기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이와같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중기청은 극단적인 폐지론을 주장하면서 중소기업간 경쟁제도 도입과 아울러 보완시책 개발 및 시행을 제시했으나 중소업계는 폐지보다는 신규물품 확대 등의 제도 개선을 주장해 3시간에 걸쳐 개최된 공청회가 ‘집단 혈투극’을 방불케 했다.
공청회를 진행한 최정표 교수는 “이번 공청회는 특정인의 질타보다는 보다 나은 대안책을 마련하고자 모인 만큼, 상대방 비하 발언은 삼가했으면 좋겠다”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패널들의 의견으로 전환시켰다.
다음은 이번 공청회의 참석했던 패널 5명의 발표 의견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연구위원 : 제도나 정책은 항상 양면성을 띄고 있다. 단체수의계약제도도 이와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의 판로 개척이라는 순기능과 물품지정의 비합리성이라는 역기능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책이 완전히 결정될 때까지 자숙해야 할 것이다. 앞서 이기우 국장의 발표문 중 저가입찰가격조사제도 도입은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도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한 해 입찰건수는 수십만 건에 이르는데 일일이 하나씩 조사를 감행한다는 것은 결국 정부기관이나 중소업체 모두의 채산성 악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김태형 단체과장 : 초기 단체수의계약제도는 중소기업 규모가 매우 영세했을 때 도입된 제도지만, 현재는 과연 대기업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제도인지 의문이 든다. 따라서 중소 공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 개편을 단행해 중소 전체의 보호 및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정위는 정부의 보완시책 방향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다.
한국정보통신공업협동조합 주대철 이사장 : 솔직히 오늘과 같은 형식적인 공청회에 참석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오늘 공청회는 제도 개편을 위한 공청회가 아니라 폐지를 기정사실화한 후 업계에 통보하는 식의 공청회다. 정부기관에서는 왜 이 제도의 문제점만을 나열하면서 폐지하지 못해 안달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중기청에서 보완시책으로 내놓은 개편방향 중 ‘중소기업간 경쟁제도 도입’은 이미 지난 199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데 정부는 이를 새 제도인 양 포장해 우리들을 혼돈시키는지 모르겠다.
1년 매출액을 비교해봐도 단체수의계약제도는 4천억 원인데 반해 중소기업 경쟁제도는 1천억 원이라는 결과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단 폐지하고 보는 것은 제도가 아니다. 몇 개의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일반화된 논리에 불과하다. 제정 후 여러가지 방법을 병행 실시해서 필요가치가 큰 것부터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산업연구원 김홍석 부연구위원 : 과거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성장이 더뎌왔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방안책으로 단체수의계약제도가 시행됐지만 현 시점에 이르러서는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경쟁제한적인 제도의 성격으로 중소기업들이 제도에 안주함으로써 기술개발을 경시, 장기적으로 경쟁력 강화에 역행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중소기업의 우호적인 공공 구매제도 도입과 아울러 수주확대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특히 수주확대 기회는 처음 단체수의계약제도의 취지대로 생산 중소기업체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주)하재 이수묵 대표 : 앞서 발표한 주대철 이사장과 같이 오늘의 공청회는 개선보다는 폐지를 위한 공청회같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다. 중기청 발표자료만 보더라도 단체수의계약제도는 폐지해야만 하는 제도로 몰아가고 있다. 제도에 대한 문제점 개선을 위해 폐지보다는 방안을 먼저 강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한다.
이 제도는 많은 업체가 관계하고 있어 다양한 문제가 표출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면 받아들일 용의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

정부·업계, ‘3시간 기싸움’에 그쳐
5명 토론자들 각자의 의견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해 문제점이 있다는 면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입장차이라는 한계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열띤 논쟁은 끝났다.
패널들의 토론이 끝나자 대다수 방청객들은 준비해 온 질문과 다채로운 의견으로 공청회 막판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대다수 방청객은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해 옹호하는 입장으로, 중기청에서 준비한 안건에 대해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했다. 방청객이 제시한 의견 중 중점이 되는 부분은 “단체수의계약제도를 무리하게 폐지하려는 것은 힘없는 중소업계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날같은 희망으로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단체수의계약제도였다”며 중소업계의 열악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방청객의 이같은 의견에 대해 이 국장은 “오늘의 안건이 현행제도 유지 보완 문제인 만큼 패널 및 방청객 의견을 신중히 검토, 타당성있는 의견은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면서 “유사수의 계약문제는 관계부처 협의를 이끌어 낸 바 있고, 공공구매 효율성 문제는 미국 DB 방법을 검토 중에 있다”며 방청객 질의에 짤막하게 답변했다.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한 이번 공청회는 단체수의계약제도 개편보다는 현행제도 폐지와 유지 보완 문제의 비중이 컸다는 것이 대부분의 중론이다. 정작 중요한 개편에 대한 대안 마련보다는 정부기관의 탁상행정과 중소기업의 이기적인 기업 운영방식에서 빚어진 ‘3시간 기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단체수의계약제도에 대한 논쟁은 이제 업계의 심신을 지치게 하는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가 협력하며 장기적인 경제 불황의 난국을 파헤쳐 가야 하는 지금, 서로의 가슴에 칼을 겨누는 사태를 하루빨리 종결하고 한걸음씩 뒤로 양보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기다.
■글·이재현 기자 / jhlee@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