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재년월 ; 2003년 9월호
부제목 ; 지난 10년간 사망률 18.36%, 해마다 급증

지난 7월 28일 오후 2시20분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주엽2동 그랜드백화점 지하 2층 식품매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1층 잡화점으로 올라가던 김 모(3.고양시 덕양구 토당동)양의 오른쪽 발이 에스컬레이터에 끼이면서 발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김 양은 어머니(30)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 신고 있던 샌들이 에스컬레이터의 스텝이 경사부에서 수평으로 전환되는 상부부분의 스텝과 스텝 사이에 틈에 끼이면서 사고를 당했다. 피해를 입은 김 양은 사고 즉시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봉합수술을 받았으나 어린 나이에 상처입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쉽게 아물지 않고 있다. 이렇듯 에스컬레이터에 발이나 손이 끼는 등 어린이들의 승강기 관련 안전사고가 해마다 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대형 판매 및 영업시설 내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만도 올 한해 4건에 이른다.
승강기 보수업에 종사하는 한 네티즌(ID : 쉼터지기)은 “언젠가 에스컬레이터에서 장난치는 아이에게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했더니 그 아이의 엄마가 자기 애에게 ‘왜 뭐라 하냐’고 따지듯 노려본 적이 있었다”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면서, “에스컬레이터는 사고비율도 가장 높고, 특히 여름철에 애들 샌들이 잘 말려 들어간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사실 승강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면 보도가 잘 안돼서 그렇지 백화점이나 대형할인마트 등에서 안전확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유사사고가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함에도 장사속에 밀려 자체 보험처리하고 ‘쉬쉬’ 해버리는 등 사고보고의 의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13세 미만 어린이 피해 증가양상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원장 박문수, www.kesi.or.kr, 이하 관리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부터 지난달 25일까지 발생한 승강기 안전사고는 총 27건에 27명의 사상자(사망 8, 중상 15, 경상 4)를 냈으며, 이 중 13세 미만 어린이는 8명(사망 2, 중상 5, 경상 1)이나 된다.
이같은 수치는 전체 사상자 대비 29%, 사망자 비율만 25%에 해당돼 승강기 관련 어린이 안전사고의 위험수위가 매우 심각함을 방증하고 있다.
단순히 사고가 많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사고가 해마다 줄어들기는 커녕 최근 몇 년 전부터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지난 1993년부터 지난달 8월 25일까지를 기준으로 한 사고통계(▷참조 : 우측 표 1)를 보면 IMF 당시인 1998년에 총 34명이 사고피해를 입었으며, 이 중 13세 미만의 어린이 피해자도 5명 중 4명이 사망하는 등 역대 최고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그 전까지는 사고발생 피해가 등락했지만, 1999년부터는 매년 12­26­28­31­27(8월 25일 현재까지)로 전체 사고건수가 꾸준한 증가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13세 미만의 어린이 사고도 6­11­7­14­6으로 피해자 수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피해정도에 있어서 1999년과 2000년의 두 해의 경우만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2001년부터 1 ~ 2건씩 다시 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93년 이후 지난 10여 년 간 총 2백66명의 피해자(사망 98, 중경상 168)를 냈고 이 중 13세 미만 어린이는 66명(사망 18, 중경상 48)에 이른다. 전체 중 어린이 사망률은 무려 18.36%나 된다.

어린이 사고 사망률, OECD ‘최상위’
그렇다면 국내의 경우 승강기 안전사고를 포함한 전체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률은 어느 정도나 될까.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가 하나 있다.
어린이들의 안전사고 예방을 주 임무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국제단체의 한국지부인 세이프키즈코리아(대표 송 자, www.safekids.or.kr)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률 분석’에 따르면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는 어린이 10만 명 당 안전사고 사망률이 14.8을 기록해 멕시코(17.1)보다는 낮지만 스웨덴(3.8), 영국(3.8), 일본(5.8) 등의 선진국에 비해 3 ~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 OECD 가입국 중에서 어린이 안전사고 사망률이 최상위 수준이며 안전교육, 안전시설, 안전관련법제도 등에서도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세이프키즈코리아의 임승지 책임연구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지난 2001년 한 해 1천2백20명의 어린이가 각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사망순위는 교통사고가 49%(5백90명)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익사사고 19%(2백34명), 낙상사고 11%(1백38명), 질식사고 9%(1백9명), 화상사고 6%(78명), 접촉성중독 2%(30명), 음독사고 1%(11명) 순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기타사고로 분류된 19명 안에 승강기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 1명이 포함돼 있다.
이렇게 봤을 때 앞서 분석한 13세 미만 어린이들의 사망률 등의 수치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1백 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국내의 경우 1천 명 이상이 교통사고, 익사사고, 추락사고 등의 안전사고로 인해 죽는 현실에 비한다면 그리 비중있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몇몇 승강기 전문 검사기관을 제외하고는 승강기 분야의 어린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나 예방차원의 정책적 배려는 국내 어느 정부기관이나 유관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이다.
지난 5월 5일, 올해로 81회째를 맞이한 어린이날을 기념해 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올해를 ‘어린이 안전 원년’으로 선포한 바 있다. 이 날 노무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어린이 안전사고 대책 세미나’에 참석, 어린이 보호 및 육성 대책의 일환으로 ‘어린이 안전 원년’ 선포 서명식을 가졌다.
선포식에선 몇 해 전 씨랜드 화재참사로 동생을 잃은 초등학생을 비롯, 학부모, 시민단체, 소아과 의사 대표가 각각 어린이 안전사고 관련 사례를 발표했으며,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공약의 연장선상에서 “임기내에 어린이 안전을 위한 모든 제도와 환경을 정비하겠다”면서 “5년간 어린이 안전사고를 매년 10%씩 낮춰 2007년까지 반으로 줄임으로써 OECD 국가에 상응한 수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형식적 틀 안에 맴도는 정부의 안전정책
그러나 이를 비웃기나 하듯 어린이날이 지난 직후에도 아파트 난간에서의 어린이 추락사고 등이 연이어 발생했다. 딱히 다른 분야의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당장 5월 6일만 해도 경남 창원시 상남동 롯데백화점 창원점에서 황 모(7)군이 에스컬레이터 핸드레일 인입구에 손이 끼고, 같은 달 28일에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조합상가에서 이 모(11)군이 건물 1층 자동차용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6월과 7월에도 각 1건씩 사고가 발생해 3살 어린이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마치 승강기가 존재하는 한 결코 노 대통령의 선언적 약속은 실현될 수 없음을 주지시켜주는 듯 하다.
더욱이 개탄스러운 것은 이 날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마련된 국무총리실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의 ‘어린이 안전관리대책 추진기획안’에서조차 한 마디 언급도 되어 있지 않아 그야말로 승강기는 안전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기획안의 내용 자체도 형식적인 냄새가 짙다. 중요추진과제도 ▲관련 법 및 제도 보완 및 행정관리 강화 등을 통한 어린이 안전 인프라 구축 ▲각급 교육기관의 안전교육을 통한 어린이의 위험 대처능력 함양 ▲대국민 안전문화 정착을 위한 안전의식 고취 등을 비롯한 어린이 안전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 등 틀에 박힌 안만 내놓고 있다.
2003년 6월 말 현재 국내 설치돼 운행 중인 승강기는 벌써 24만5천6백68대를 넘어서고 있다. 오늘날 승강기는 하루도 이용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 성격이 짙은 승강기의 안전을 확보하는 문제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최우적인 국가적 과제임에도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
글 : 박대성 기자 / dspark@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