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해진 中, 작아지는 韓
에스컬레이터 시장, 중국에 발목 잡혀…눈앞이 ‘캄캄’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아니 이미 예견된 일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시장으로 유입되던 저가의 중국산 엘리베이터가 국내 시장을 평정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제조업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어디서 부터 꼬인 문제걸까? 특히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8천만원을 호가하던 제품 단가가 현재 3천만원대로 곤두박질 친 상태다. 중국시장에 발목을 잡힌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의 앞날이 캄캄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의 현재를 되짚어 봤다. ●

국내 에스컬레이터 제조 중소기업이 종적을 감췄다. 아니 찾을 수가 없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시장에 들어온 저가의 중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평정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승강기 업계 ‘빅 3 기업’에서만 생산·공급되고 있으나, 이 역시 중국 공장에서 생산돼 국내산 에스컬레이터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따라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8천만 원을 호가하던 에스컬레이터 제품 단가가 현재 3천만원대로 곤두박질 친 상태다. 국내 에스컬레이터 업체의 한 관계자는 “최대의 원가절감을 전재로 하더라도 최소 6천~7천만원 선에서는 거래가 성사돼야 하지만 중국산 제품이 워낙 저가라 국내에서는 도저히 생산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국내 생산을 고집해 온 중견기업에서도 단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산 제품을 수입할 밖에 없는 처지다.
현재 대표적인 중국회사는 DTS社, Carry社, Shenlong社. 후지텍코리아는 DTS社와 꾸준히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
Carry社는 국내 에이전트社인 지앤피리프트를 통해 아남테크와 수림엘리베이터社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연간 2천여 대의 생산대수 중 1백20여 대를 한국으로 공급하고 있다. Shenlon社사는 국내 에이전트社 전이앤씨를 통해 국내 공급 단계를 밟고 있다.

중국産, 안전성·A/S면에서 신뢰 떨어져
이처럼 중국회사의 활발한 진출 움직임 속에서 국내 유입 물량은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완제품을 수입, 현장에서 부품 조립 등 간단한 작업만으로도 설치가 가능해 설치작업의 용이성과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게 된 시발점은 몇몇 대기업들이 국내 생산기지를 처분하고 중국 생산공장에서 제작한 제품을 국내로 역수입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에스컬레이터 누적 설치대수는 1만6천3백5대로 연간 6백억~9백억원의 시장 규모로 추산된다.
이중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이 중국산 제품의 역수입으로 단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바람에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의 외국산 제품이 물밀 듯이 유입되면서 결국 안전사고 발생률이 높아지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라면서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한 후 1~2년은 정상 작동이 가능하지만 내구성이 떨어지므로 이후부터는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지보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에스컬레이터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볼트나 너트 등의 부품이 국내 규격과 일치하지 않아 난관에 부딪칠 공산이 크다. 보수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이 판을 치면서 국내 에스컬레이터 업계는 일손을 놓고 지낸 지 오래다”며 “기존에 설치된 국내산 에스컬레이터 부품 교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부품 조달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중국에서 저가로 제품을 수입하고 있지만 향후 중국산 제품이 시장 전체를 장악할 경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며 “업계는 이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지만 걱정만 할 뿐, 마땅한 비책은 마련되지 않아 한숨만 쉬고 있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돌파구 모색, 업계 정화 해야 할 때
해결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할 정부도 오히려 입찰시 계약조건에 승강기 인증(시스템 인증)을 요구조건으로 내세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오히려 장벽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 공공구매기관인 조달청이 계약조건에서 규정하고 있는 시스템 인증 비용은 기종 당 4천만원이 훌쩍 넘어 ‘중소기업 말살정책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이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더군다나 에스컬레이터 기종은 형식과 속도에 따라 6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그렇다면 총 2억 원이 넘는 비용을 시스템 인증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라며 “중소기업의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중소기업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더군다나 에스컬레이터 입찰은 대부분 최저가 입찰제를 적용해 가격경쟁력에서 중국 제품을 앞설 수 없는 국내 에스컬레이터 업체는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2005년을 정점으로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그러나 ‘잘 나가던’ 시대는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다. 업계는 지금 중국산 제품의 무분별한 유입으로 ‘물’이 흐려졌고 자포자기의 늪 속에 빠져있다. 지금은 업계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업계 정화를 해야 할 시기다. 자취를 감춘 국내 에스컬레이터 생산 업체가 금의환향(錦衣還鄕)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글·이재현 기자 / jhlee@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