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로드맵, 업계에선 ‘관심 밖’
승강기 관리주체 책임 대폭 강화, 노후 승강기 특별관리
10년 내 안전사고 50% 감소 및 수출 800% 증가 목표

지난해 초부터 정부에서 실시한 승강기 발전 로드맵이 그 베일을 벗었다. 로드맵을 내용을 살펴보면 승강기 관리주체의 책임이 대폭 강화되고, 승강기 안전기준 선진화 및 승강기 산업 발전 기반 조성을 위한 지원정책 추진이 주요골자다. 이에 대해 중소 승강기업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국내 승강기 산업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는 중소업계에서의 이런 반응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그동안 로드맵 회의에 참석하면서 제시했던 의견 중 대부분이 묵살되고 안전강화에만 치중됐기 때문이다. 승강기 산업 육성을 위한 로드맵이 누구를 위한 청사진 제시인지 본지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을 살펴봤다.

■글·이재현 기자 / jhlee@liftasia.com

앞으로 승강기 관리주체의 책임이 대폭 강화되고 승강기 안전기준의 선진화와 승강기 산업 발전기반 조성을 위한 지원정책이 함께 추진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승강기 발전 로드맵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산업자원부(장관 김영주)는 지난달 19일 ‘승강기 발전 로드맵’을 확정·발표하고, 선진화된 승강기 안전 환경을 조성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것을 다짐했다.
이번에 산자부가 발표한 승강기 발전 로드맵은 향후 10년 안에 승강기 사고율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출 800% 증가 달성을 목표로, ▲승강기 산업 진흥 ▲안전관리제도 혁신 ▲안전기준 선진화 총 3대 전략분야의 39개 과제를 2008년, 2010년, 2016년 연도별 3단계로 구분해 추진된다. 산자부 관계자는 “승강기는 하루 24시간 이용하는 생활필수설비로, 이용자 안전사고 저감 대책과 승강기 기술 발전 정책 그리고 선진화된 승강기 이용문화 조성이 필요하다”며 “로드맵을 차질없이 추진해 오는 2016년까지 2006년 기준 2.7건의 1만대 당 사고발생건수를 1.3건으로 줄이고, 승강기 수출액(2006년 1.6억 달러)을 15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산자부의 승강기 발전 로드맵 추진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선진국과 같이 신제품·신기술에 쉽게 적용할 수 있도록 일반 검사기준도 성능형 기준으로 전환되고, 노후 승강기 검사를 위한 검사기준도 별도로 제정된다. 이와 함께 보수업계의 오랜 숙원인 보수용 부품의 원활한 확보를 위한 ‘(가칭)승강기부품공급센터’를 설립해 승강기 제조업체가 의무적으로 보수용 부품을 제공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승강기 업계는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승강기 검사기관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자세를 취하는 반면, 중소업계는 확정안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검사기관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책은 관심 없다”며 “지난 16년간 정부는 20여 차례나 승강기 안전관리에만 덧칠하더니, 이번에도 역시 승강기 발전 10년 계획이라는 그럴 듯한 포장으로 중소업계를 기만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다른 중소업계 관계자도 “또다시 승강기 안전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공청회나 회의는 쓸데없는 시간낭비인 것 같다.이는 승강기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제조와 보수 부문의 관련정책을 뒷전으로 생각하며 더 나아가 업계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피력했다.

“로드맵, 중소업계 무시하는 방안”
산자부가 발표한 승강기 발전 로드맵 시행을 앞둔 이 시점에서, 현재 국내 승강기 시장을 어느 정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승강기는 기술집약적 생활설비로 글로벌 산업 발전과 함께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이다. 국내 승강기 시장은 15.6억 달러(약 33만6천대) 정도로 세계 9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승강기 시장 규모(3백60억 달러, 약 7백90만대)의 약 5%를 점유할 정도다. 연간 성장률 또한 7~8%(약 2만5천대)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성장은 1980년대 말 이후 건설시장 확대와 함께 고층 아파트 건설 붐으로 승강기 시장 규모가 급격히 성장한 데서 기인한다. 1989년 1만7천대였던 국내 승강기 설치대수는 2006년 현재 33만6천대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성장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핵심기술 개발 투자의 부족으로 대외 기술의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산업 경쟁력도 타 산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선진국은 고속·지능화 승강기를 개발해 세계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고속 기종의 원천기술력이 부족해 대부분 선진국 제품을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국내 승강기 시장은 다국적 기업(59.8%), 대기업(24.5%) 위주로 중소기업(15.7%)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외에도 이용자의 안전의식 부족, 보수업체의 과당경쟁으로 보수 부실, 노후 승강기 증가로 안전사고 증가 등 승강기 안전 전반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1995년 보수업체 등록요건이 완화되면서 2백35업체에 불과했던 보수업체가 지난해 기준으로 7백22업체로 3배 이상 급증해, 저가가격 경쟁 인한 보수 부실이 큰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보수 부실을 제대로 관리해야 할 시·도의 관리주체, 보수업체도 관리 소홀로 인해 자체점검 활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산자부는 지난해 2월 승강기 생산자 단체, 소비자, 검사기관, 학계 및 정부 대표로 구성된 ‘승강기 발전 로드맵 추진 위원회’에서 로드맵 초안을 마련하고, 공청회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승강기 발전 로드맵’을 확정했다. 다음은 3대 전략분야에 대한 중점 추진과제를 소개한 것이다.

승강기 안전관리제도 혁신 
로드맵에 따르면 안전관리제도 혁신을 위해 안전관리 인프라가 강화되고 관리주체의 책임도 대폭 강화될 계획이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안전관리 정책 방향을 정립해 이를 관련 기관이나 업계에 미리 제시하기 위해 ‘승강기 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정기적으로 수립·공표한다. 또 승강기 안전홍보체계 구축, 승강기 종합정보관리시스템 구축 등 안전관리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인프라를 대폭 강화하고, 사후관리체계 재정립, 사고조사 기능 확대, 분쟁해결 시스템 마련 등 사후처리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다.
특히 승강기 관리주체(소유자, 관리책임자 등)가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승강기를 유지·관리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승강기 결함을 알고도 수리·보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관리주체를 형사처벌한다는 강력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한 급증하는 노후 승강기에 대한 특별관리제도와 정밀안전진단 권장제도도 도입된다. 15년 이상된 노후 승강기는 올해 4만1천8백20대에서 내년엔 6만대 오는 2010년에는 9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차별화된 종합관리 시스템을 구축·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첨단 검사장비의 도입과 검사주기 개선 등 승강기 검사체계를 선진화하고 국제공인 수준의 안전인증체제도 구축된다.
산자부 관계자는 “승강기 업계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인 승강기 보수업체 난립 방지를 위해 보수업 등록요건을 강화하고 책임유지보수 계약 활성화를 통해 보수품질 향상을 유도하겠다”면서 “보수인력의 기술력 제고를 위해 기술 인력 양성 프로그램 개발, 정기적인 신기술 교육 등을 실시하고, ‘승강기부품공급센터’를 설립해 보수부품의 원활한 공급체계를 구축하겠다”는 향후 계획을 밝혔다.

승강기 안전기준 선진화 
우리 실정에 맞는 기준을 확립하고 근본적인 사고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승강기 안전기준의 선진화도 추진된다. 지금까지의 사고를 종합분석해 승강기 부위별 사고빈도와 사고원인 등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낸 ‘승강기 안전 위해지도’를 작성하고, 우선 순위에 따라 근본적인 사고방지 대책을 수립해 맞춤형 안전기준도 정비할 예정이다.
또 승강기 도어 이탈방지 대책 마련 등 현행 검사기준을 재정립하고 노후 승강기 안전기준도 별도로 제정된다. 이와 함께 신기술에 적용 가능한 성능형 안전기준으로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 이를 위해 기술기준 자문기구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능형 안전기준 적용을 진행할 전문가 발굴도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승강기 산업 진흥 
승강기 산업 진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승강기 산업 발전기반 조성에 필요한 지원정책도 함께 추진된다.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 전략품목(부품) 개발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공동 브랜드 개발 등으로 해외 마케팅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도록 강화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승강기 연구개발 전담 지원체제를 만들어 산학연 협력체계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승강기산업선진화위원회도 구성·운영해 승강기 산업 진흥정책 개발과 효과적인 지원 방안도 마련한다.
또 올해 실시하는 승강기 산업 정밀 실태조사를 토대로 승강기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종합방안을 수립해 추진할 방침이다. 보수업체의 대형화와 전문화를 유도해 체질을 개선하고 부품 공유화와 공동생산을 위한 협력 네트워크도 구축한다. 장기적으로는 승강기 공제조합을 설립해 승강기 생산업체와 보수업체가 겪는 자금융자와 입찰보증 등의 애로사항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이달 내 로드맵 설명회 개최
산자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승강기 발전 로드맵에 대해 승강기 관리주체, 제조업자, 보수업자, 검사기관 등을 대상으로 이달 중으로 설명회를 개최해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후 로드맵 일정에 따라 단기, 중기, 장기과제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 중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관리주체의 책임 강화, 승강기 운행관리자 관리 강화, 승강기 종합정보관리시스템 구축·운영을 위한 정보등록 의무화와 정보공개 근거 마련, 보수 인력의 기술교육 의무화, 사고조사 기능 확대, 정밀안전진단 권장제도 도입 등의 법적 근거을 위해 ‘승강기제조및관리에관한법률’ 개정(안)을 마련, 오는 9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확정·발표한 승강기 발전 로드맵에 대해 살펴봤다. 지난해 초부터 정부에서 추진한 로드맵은 승강기 안전 대책 외에도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체제를 갖추기 위한 승강기 산업 육성안도 포함시켜 업계의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담당자의 잦은 교체와 해당 부서의 변경 등으로 방안이 일괄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고, 기본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규제 강화 일변도의 로드맵이 확정되어 과연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그 목적이 모호한 상태가 됐다.
섬유, 자동차 등 국내 산업 기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실로 막대하다. 하지만 유달리 승강기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정부는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보면서 현재 승강기 산업의 방향을 반추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승강기 중소업계 또한 밥상을 차려주기만을 바라기보다 현재 모습을 다잡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