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이동권 확보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펼쳐
게재월 : 2002년 3월호

지난 2월 9일, 설 귀성객들로 붐비는 서울역 광장 한켠에서는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비롯한 일단의 사람들이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제호의 유인물을 나눠주고, 백만인 서명운동을 한창 펼치고 있었다.
지난해 1월 22일 오이도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수직형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를 상기시키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이들의 요구사항은 네가지로 우선, ▲지하철의 모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할 것 ▲장애인도 대중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을 즉각 개정·강화할 것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정부와 장애인 단체가 함께 협의할 가칭 ‘장애인이동권정책위원회’를 설치할 것 등이 그것이다.
승강기 관련업계로서는 작년의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휠체어리프트 관련업무를 산업자원부로 통합·이관하고, 또 승관법 개정과 검사기준이 마련되어 일단락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당사자 입장에 서있는 이 땅의 4백50만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장애인 단체는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라고 하는 버스조차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전국에 3백36개 지하철 역사 중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곳은 21%에 지나지 않는 76곳 뿐이어서 지하철조차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이 사회 어느 곳에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처지.
승강기 업계에서는 이제 잊혀져 가는 이슈지만 사회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당하고 있는 이들의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오이도 사고 이후 더욱 거세어져 1년이 넘게 현 정권을 상대로 힘겹고도 외로운 싸움을 계속 펼쳐나가고 있다.

이순신 동상 위, 장애인들의 절규
지난 1월 22일에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 http://access.jinbo.net)를 주축으로 장애인 관련단체들이 오이도 사고 1주년을 기념해 혜화동, 광화문 세종로 등에서 기자회견 및 집회를 가지기도 했다.
이날 오후 1시부터 혜화동 로터리에서 시작된 집회는 해가 저물고 눈마저 내리기 시작한 저녁 6시가 넘도록 계속됐다. 다음 집결지인 광화문으로 옮기려 했으나 장애인들은 버스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광화문까지 가는 8-1번 버스는 길을 봉쇄한 경찰들 뒤에서 ‘비장애인’들만 태운 채 유유히 출발했고 집회에 참가한 장애인들은 경찰에 가로막혀 자신들의 생존권과 다름없는 이동권 보장만 외쳐야 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30분경,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버스에 오르지도 못하고 또다시 경찰들에 에워싸여야 했다. 집회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과 장애인, 학생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이 때 세종로 이순신 동상 위에서, 그리고 세종로 사거리 한가운데서 이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두 명의 대학생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전단지를 뿌렸고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고 적힌 플랭카드가 동상 아래로 나부꼈다. 곧 이들에게 소방차 사다리가 놓여지고 소방관과 30분간 대치, 끌려내려오면서도 그들의 구호는 멈춰지지 않았다.
이와 함께 세종로 사거리에 모인 20여 명의 장애인들은 굵은 쇠사슬로 서로의 목과 휠체어를 이어 묶고는 경찰의 방패에 에워싸인 채 “더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하라!”는 울부짖음이 이어졌다.
쇠사슬을 두르고 30분간 도로를 점거한 장애인들의 휠체어는 마침내 절단기가 동원되고 경찰의 강제연행이 이루어진 뒤에야 하나 둘 인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이날 경찰은 집회 참가자 중 38명을 연행해서 6명을 불구속입건시키고 32명을 즉심에 넘겼다.
누가 이들을 스스로 목에 칼을 차고 휠체어와 자신의 불편한 몸을 쇠사슬로 채우며, 이순신 동상에까지 올라가 절규하게끔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은 한 장애인의 토로가 대신한다.
“장애인들에 대한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않고, 지하철 리프트에서 한 장애인을 떨어져 죽게 한 것은 분명 이 사회가 가한 타살입니다”
예산부족을 핑계대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현 정부도 문제겠지만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구조에 대해 이 사회 전체가 더이상 침묵해서는 안 될 일이다.

●글·박대성 기자 / dspark@lifta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