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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기고칼럼
ㆍ년/월/일	2015-06

잘못된 승강기 설치관행, 개선 필요하다
잘못된 승강기 설치관행, 개선 필요하다

기고 : 한국엘리베이터협회 박응구 기술위원장

국내 승강기 시장, 다국적 기업 주도 아래 ‘산업공동화’심화…결국 제품 질 저하
갑자기 멈추고, 솟구치고, 역주행하는 승강기로 인해 이용자는 불안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해결책은 없는지 짚어보자.
대한민국은 승강기 밀도가 높은 나라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등을 포함해 53만대(2015년 3월 기준)가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승강기 운행대수로는 세계 9위고, 지난해 신규 설치대수는 3만 6천여 대로 중국, 인도 다음으로 많다. 인구 100명당 1대 정도 승강기를 보유한 셈이다.
시장규모도 승강기 제조와 설치, 유지보수 등을 포함해 약 3조원에 달한다. 88올림픽을 전후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고층건물을 축조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승강기 시장도 동반 상승했다. 당시에는 건물주가 제조사에게 사정하면서까지 승강기를 구매할 정도로 승강기 시장은 호황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승강기 산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당시 승강기를 제조하던 대기업들은 주력분야를 살리거나 접기 위해 짭짤했던 승강기 사업 분야를 다국적 기업들에게 팔아야 했다. 당장 현금으로 돌릴 수 있는 우량 계열사의 매각만이 살길이었다.
이렇게 해서 오티스(미국)와 티센크루프(독일), 미쓰비시(일본), 쉰들러(스위스), 코네(핀란드)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은 LG산전과 동양에레베이터, 중앙엘리베이터 등 알짜배기 국내 승강기 기업을 인수합병(M&A)하면서 손쉽게 국내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국내 시장에서 강자로 떠오른 다국적 기업들은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부품생산 거점을 옮기고, 기술 인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품 단가가 비싸고 기술 측면에서도 어정쩡했던 국산 제품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승강기 공장(창원 L사)이 문을 닫았고 수백 개의 외주업체들도 ‘볼링 핀’처럼 쓰러졌다. 수십 년 간 정든 회사에서 정리해고된 직원들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 관련 분야 부품회사나 유지관리 회사를 차리고 업계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300개 정도에 불과했던 승강기 기업들은 이제 1,000개로 불어났다. 한정된 시장에서 기업들만 늘다 보니 과잉경쟁으로 승강기 보수료는 점점 떨어져 최근에는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든 상태로 전락했다. 현재 중소 부품회사들은 판로가 힘들어져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대기업 하청에 의존해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한국의 승강기 시장을 집어삼킨 다국적 기업들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 시장을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인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쉰들러 등은 중국 등지에 현지공장을 설립하고 대부분의 부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형태로 기업의 경영체질을 바꿨다. 대기업들이 이같은 부품 구매정책을 펼치는 이유는 가장 경쟁력 있는 해외공장에서 부품을 생산해 현장으로 바로 배송하는 것이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부품 전수조사·승강기 감리 통해 ‘사전 점검’된 설치 진행돼야
그러나 수십 개에 이르는 주요 부품들을 중국,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하다 보니 충분한 운행 테스트도 거치지 못한 채 그대로 설치되고 있어 큰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더구나 해외 공장에서 부품을 들여오다 보니 납기일이 늦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고, 발주처에서 제시한 계약조건도 곧잘 무시된다. 다국적 기업들 대부분이 국내의 아파트나 건축물 환경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적용하고 있는 자체 기준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발주처로부터 계속되는 준공 압박 때문에 승강기 설치를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건물 준공 이후 발생하는 잦은 고장과 사고, 안전상 심각한 문제로 인해 법적 다툼까지 가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승강기는 자동차, 선박과 같이 공장에서 완제품이 출고되는 기계장치가 아니다. 수천 개의 부품들이 건물 승강로에 설치되기 때문에 공장에서 부품 출하 전 반드시 조립해 보고 품질점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각의 부품 공장에서 직접 현장으로 부품이 발송되는 등 품질 검사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승객 이용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해서야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최근 3년간 승강기 고장이나 불량 등으로 인한 사고는 2012년 1만2,521건, 2013년 1만3,623건, 2014년 1만5,128건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잦은 고장은 기업들의 부품공급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처럼 검증 절차 없이 중국 또는 동남아에서 들여온 부품들을 공사기간에 내몰려 건물에 그대로 설치하는 방식이 계속 진행된다면 고장은 증가할 수 밖에 없고 그 피해는 건물주와 이용자가 떠안아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강기를 설계할 때부터 조립하고 설치하는 전 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지적할 수 있는 승강기 컨설팅이나 감리를 받거나, 혹은 부품 전수검사를 통 모든 부품을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 대부분이 이를 회피하고 있다. 고객에게 ‘불편한 진실’이 공개돼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승강기는 건축에 있어 지극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자동차보다 더 많은 3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고, 한 대 가격이 적게는 수 천만원에서 많게는 수 십억원을 호가한다. 따라서 건물주는 승강기를 설치함에 있어 해당 시공사에게만 전적으로 맡겨 놓기 보다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시각을 가진 승강기 전문가를 통해 컨설팅이나 감리를 받아 보거나 부품 전수검사를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과도하게 부풀려진 공사비를 적정수준으로 재평가할 수 있고, 잦은 고장으로 인한 각종 피해, 스트레스, 사고불안감 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