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거중기에서 초고층용까지…최고의 ‘진화환경’ 활용해야
글 : 이기출 현대엘리베이터(주) 상무
게재월 : 2003년 8월호

자, 여기 인간이 만든 아주 높은 빌딩이 서울에 있다고 가정하자. 높이는 한…1,500미터라고 하자. 건물 꼭대기에 올라서면 웬만한 산은 발 아래 놓이게 되고, 저 아래 구름도 보인다. 차도의 자동차는 보이지도 않는다. 날씨만 맑다면 인천 앞바다가 아니라 중국도 보인다. 이 빌딩의 옥상은 서울을 찾은 해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이고 시골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서울에 사는 아들, 딸들에게 한 번 가보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관광객들은 계단으로 걸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 꼭대기까지 1박 2일, 왕복 4일이 소요된다. 돈 많으신 분들은 빌딩 아래에서 운행하는 셔틀 헬리콥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다. 이와 같은 상상은 가정이지만 지금 당장 1,500미터 높이의 빌딩에 효과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한 승강기는 실제로 없다. 아직까지는 그 상태까지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강기의 진화를 이야기하기 위해 가장 간단한 개념의 승강기를 생각해 보자. 지금 한 마을에 우물이 하나 있고, 이 우물은 깊이가 10미터 정도 된다. 우물에서 물을 뜨기 위해 두레박을 줄에 매달아 우물 아래로 내리고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이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계속하다 보니 두레박을 끌어올릴 때 힘이 너무 많이 든다.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를 우물에 이용한다. 이제 힘은 많이 줄어든다.
그러나 도르래를 써서 줄을 당기는 힘은 줄었지만 줄을 당기는 거리는 늘어나게 된다. 불편하다. 고정도르래만 사용하고 두레박 반대편 줄에 적당한 무게의 돌멩이를 단다. 줄을 끌어당기는 힘과 거리가 모두 줄어든다. 사람이 계속해서 줄을 끌어당기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마을에서 당나귀나 소를 한 마리 우물가에 데리고 와서 사람 대신 줄을 끌게 한다….
위의 기술은 간단한 개념의 승강기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 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지혜가 더 커지고 느끼는 불편함이 커질수록 승강기는 진화하게 된다. 동력을 사용하고 전자기술이 발전하면서 보이는 승강기의 진화과정을 외국과 우리나라의 경우에서 살펴보고 앞으로 승강기의 진화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 될지 살펴보도록 하자.

국내 승강기 기술 변천과정
문헌에서 보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승강장치는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이다. 거중기는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를 적당히 사용하여 40근의 힘으로 25,000근을 움직일 수 있는 승강장치로 이 거중기를 이용하여 수원성, 즉 화성(사적 3호)축조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수원성은 이러한 근대적인 거중기를 사용하여 단 2년만에 축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실학이 발달하지 못하여 이러한 실용적인 승강장치가 더 발전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나라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수직 운행장치는 일제 강점기 바로 전인 1910년에 조선은행에 설치된다. 일제 강점기의 승강기의 설치는 대부분 미국 및 일본 회사에 의한 것으로 그나마 설치된 것도 일제 말기의 공출명령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어 그 원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승강기의 태동기는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로 이 때부터 승강기가 생산되고 설치되기 시작한다. 3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많은 공단이 조성되었고 공단에서 필요로 하는 화물용 승강기의 국산화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에는 우리나라에 해외의 유명승강기 회사와 함께 합작 및 기술지원의 형태로 승강기를 전문적으로 설치·보수하는 회사가 여럿 탄생하게 되고, 급격한 경제개발로 인해 화물용 및 고속 승강기가 많이 사용되게 된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의 고속성장기로 대형 건물의 고층화 및 아파트의 보급 등으로 승강기 시장은 그 규모가 점차로 커지게 된다. 1970년대 승강기는 속도제어에 있어 교류 전압제어 방식(중저속)과 워드레오나드(고속)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970년대 초에는 국내 최초로 인승용 AC-2 기종의 승강기가 국내기술로 제작·설치된다. 그러나 AC 기종은 가·감속 및 정지 시 승강기 내에서 쇼크가 많고 소비전력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1980년대에는 AC 저속기종을 완전히 국산화하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유치 및 아파트 수량의 증가 등으로 승강기 수요가 증가하자 이로 인한 생산시설을 대형화하고, 고급·고층화된 건축물의 요구에 맞도록 고급사양, 고속의 승강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 때 저속기종은 교류 전압제어방식에서 벗어나 사이리스터를 적용한 교류 귀환제어를 적용하였는데, 이 방식은 모터의 현재 속도를 피드백 받아 이 데이터를 근거로 정확한 속도제어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소비전력이 크고, 사이리스터의 소음 등이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우리나라의 승강기 산업은 자체기술 배양을 위한 준비기가 되어 주었다. 이전까지의 기술제휴 등을 바탕으로 1990년대 초에는 가변 전압 가변 주파수(VVVF) 방식을 적용하여 소음 및 소비전력을 크게 낮추었고 직류전동기와 동등한 제어성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 방식은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2000년도 초에는 국내 자체기술로 기계실 없는 승강기를 제작·설치하고 있으며, 적용할 수 있는 속도 및 층수도 분속 120m, 32층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내 승강기의 진화 속도는 세계가 놀랄만한 것으로 이미 분속 500미터 이상의 초고속 승강기를 국내 기술로 제작·설치가 가능하며, 그 기술 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에 바짝 다가서 있다.

향후 예상되는 승강기 기술시장 동향
지금까지의 승강기 기술의 진화속도와 급변하는 승강기 시장환경을 감안해 볼 때, 앞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승강기 기술시장의 동향을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향후에는 기술이 보다 고속화, 지능화, 복잡화되어 가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서, 분속 1,000m 이상의 초고속 승강기 개발을 위하여 메이저 승강기 업체들이 앞다투어 기술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며,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기존의 현수장치인 와이어로프를 대신할 특수소재가 개발되거나, 현수장치가 필요없는 소위 와이어리스(Wireless) 또는 케이블리스(Cableless) 승강기의 출현이 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건축공간의 최적화와 환경 친화적인 경향으로 기계실 없는 승강기(MRL)의 선호도가 높아져 승강기 시장에 급속도로 확산될 것이며, 이런 경향은 이미 승강기 시장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보수 및 개보수 작업(리모델링 작업)이 활성화되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부품 및 시스템을 교체할 수 있느냐”가 기술의 관건이 될 것이고, 플러그인 공법에 의한 설치로 최단 시간 내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기존 건물이 공간이 협소할 경우 피트리스(Pitless) 승강기 등의 적용으로 설치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수의 효율화와 고객만족의 증진을 위하여 전산화된 보수체계가 도입될 것이며 이를 위해서 원격감시를 이용한 승강설비의 관리와 보수시스템의 네트워크화가 주요 화두로 대두될 것이다. 그리고 보수업무의 비중 또한 애프터서비스(AS ; After Service)에서 비포서비스(BS ; Before Service)의 개념으로 전환되어 나갈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건설경기를 위축시킬 것이고, 이에 따라 건설경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승강기 시장도 냉각될 것이라는 예측과 이에 설상가상 격으로 국내 승강기 시장에 세계 메이저 5개 승강기업체들의 진출로 시장상황은 가열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각 업체들은 경쟁사에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중국 및 동남아 시장의 현지법인 설립을 통하여 부품을 조달하고 있는데, 이것이 향후 국내 승강기 시장의 불가피한 추세라 하더라도 승강기 기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초고속 및 첨단기종에 대해서는 국내 기술개발이 등한시되는 우를 범하고 있는 실정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산업 전반에 안전불감증이라는 자성의 소리와 함께 안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높아짐에 따라 승강기 시장에서도 검사기준이 강화(상승방향 과속 방지장치, 개문발차 방지장치에 대한 15층 이하 건물 확대적용 등)되고 있으며, 또한 선진국들의 기술기준 블록화가 가속화되어 제품인증을 강제제도로 채택, 이를 무역에 관한 기술장벽으로 이용함으로써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기술수준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승강기 기술기준으로 EN CODE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기술장벽이라는 부정적인 면과 함께 승강기 기술면에서는 기술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언을 정리해보자면 우선, 승강기의 진화속도를 결정하는 데는 ▲사용자의 요구(불편함) ▲건축기술 ▲생산기술, 이상 3가지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위의 3가지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전기제어분야에서도 손꼽히는 강국일 뿐만 아니라 토지 활용성을 최대로 하여 건축물을 지어야 하는 사용자의 요구도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승강기 진화 기반은 이미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다.
건축기술의 새로운 발달로 초고층 건물이 건설되고, 공간확보 등의 문제로 건물이 대형화·고층화되면 근래에 구미 각국이나 일본에서 설계·시도되고 있는, 500층 이상의 ‘건물도시’가 조만간 우리나라에도 탄생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아니 그렇게 되려면 승강기는 수직운행이 아닌 수직·수평으로 움직이며 단일 건물내를 그물과 같이 여기저기로 이여 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고, 이미 이를 대비하여 여러 승강기 업계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최고 수준의 진화 환경을 가지고 이를 잘 이용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가능하도록 스스로를 다그친다면 우리나라가 승강기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사용자의 요구와 그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 한 승강기의 진화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문의 : 현대엘리베이터 / 전화. 031-644-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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