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경부선, 1일 차량 평균 통행량 45,750여대, 차량 수용능력은 고작 1,390여대에 머물러
게재월 : 2003년 2월호

작년 12월 중순 경부고속도로 부산방면 옥산 휴게소에서는 화물차 운전자들에 대한 휴게소의 차별대우에 강력히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 날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화물연대 소속 노조원 3백 여 명은 트레일러와 대형 화물차 2백 여 대로 휴게소 주차장을 완전히 점거한 채 3시간 반 동안 시위를 벌여 주변교통은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이들 노조원들은 화물차 전용 휴게소가 전국에 4군데 밖에 없고 최근 BS구역(Bus Stop Space, 일명 간이 휴게소)까지 없어지는 등 화물차 운전자들의 쉴 곳이 턱없이 부족한데도 휴게소들이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고속버스나 승용차를 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반 휴게소에는 샤워시설, 수면실 등의 시설을 완비해 놓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야간에 차량을 운전해야 하는 화물차 운전자가 이용하기에는 적합치 않다고 지적했다.
화물차 전용 휴게소는 국회, 건설교통부 등 관계기관 및 관련단체의 지속적인 휴게소 확충요구가 받아들여져 지난 1997년 6월 경부고속도로 천안 입부근에 입장 휴게소가 완공되어 운영된 이후 몇몇 휴게소가 지어졌지만, 지난 1995년 고속도로공사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휴게소를 민영화하면서부터 일반 휴게소에서 화물차는 영업이익이 적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휴게소 집회 발단은 운전 도중 생리현상을 느낀 화물차 운전자가 일반 휴게소에 진입했지만 화물차 주차지역이 차량으로 가득차 있었고, 이어 버스 주차지역에 주차를 하려고 했지만 주차관리원에게 주차 제지를 당하는 일들이 계속되자, 결국 차별대우에 대한 항의표시를 위해 휴게소를 점거하게 된 것.
이 농성은 휴게소 측의 사과 현수막 개시와 재발방지 및 사과공문 발송, 휴게소 소장이 공개사과를 약속함으로써 일단락 됐지만, 관련기관의 화물차 전용 휴게소와 주차공간 확충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한 이런 마찰은 또 언제 터질지 모른다.

화물연대 노조, ‘우리에게 쉴 곳을 달라’
현재 국내 고속도로 총 길이 2천6백km 중 휴게소는 총 1백17곳이다. 경부선의 경우 휴게소 31곳, 차량 수용능력은 총 6천7백여 대로, 이 중 화물차 운전자를 위한 화물차 전용 휴게소는 경부선에 옥천(하), 칠곡(하), 신탄진(상), 입장(상) 등 단 4곳 불과하며 화물차 수용능력은 1천3백90여 대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 한 해 1일 평균 경부선 화물차 통행량 4만5천7백50여 대에 비한다면 화물차량의 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직업 특성상 대형 화물차 운전자는 하루 24시간 대부분을 차량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식당, 매점, 샤워시설, 수면실을 갖춘 화물차 휴게소 확충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문제다.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화물연대 오윤석 경인지부장은 “화물이 야간에 이동되는 특성으로 화물차 운전자는 밤시간에 운전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현재 휴게소 규모로는 운전자들이 쉴 공간은 턱없이 부족한 편”고 말했다. 또 오윤석 지부장은 “경부선을 이용해 서울에서 부산을 운행하는 대부분의 대형 화물차량은 평균적으로 주 3회 왕복운행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화물차 운전자는 운전대를 잡는 시간이 근무시간이고 운전대를 놓는 시간이 취심시간”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울발 부산행 화물차량의 운행 싸이클은 월요일 오전 서울에서 배차를 받은 차량들이 상차지로 출발해 상차를 하게 되며, 상차작업을 마친 차량은 목적지인 부산을 향해 서울에서 평균적으로 6시 넘어서 출발한다. 상차작업이 늦은 차량의 경우에는 밤 11시에 출발하기도 한다. 일단 상차를 마친 차량은 고속도로를 진입하게 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식사와 수면을 취하고 부산에서 다음날 오전에 화물을 하역하게 된다.
부산에서 하역을 마친 차량은 서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배차를 받고 상차지로 출발해 화물을 싣고 저녁에 또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 휴게소를 경유해 휴식을 취하고 수요일 오전에 화물을 하역한다. 이러한 싸이클로 주 3회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기 때문에 화물차 운전자들은 24시간 대부분을 차량에서 지내게 된다. 이 때문에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가며, 집을 대신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화물차 휴게소라는 것이라는 게 오윤석 경인지부장의 설명이다.

화물차 운전자 여건마련, ‘시급’
따라서 화물차 운전자에게 휴게소는 단순히 짧은 휴식을 위해 거쳐가는 공간이 아니라 식사는 물론 세면과 샤워 및 수면도 취하는 사실상의 ‘집’인 셈이다. 특히 매일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오윤석 지부장은 “일반 운전자에게 휴게소는 매일 들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휴게소의 상황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적은 편이지만, 매일 고속도로 휴게소를 이용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휴게소는 단지 짧은 휴식을 취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동료의 경우 몇일 집에 못들어가서 상차작업을 마치고 마땅히 씻지를 못해, 샤워시설이 없는 휴게소에서 세탁과 세면을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같은 화물차 운전자로서 비애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화물차 휴게소가 절실한 화물차 운전자에게 현실은 냉정하다. 화물차 휴게소 절대부족으로 짧은 휴식은 커녕 아예 주차할 공간조차 없는 것. 저녁 10시 이후가 되면 휴게소는 거의 만차가 되기 때문에 고속도로에 늦게 진입한 화물차량은 갓길이나 인터체인지 주변 가속차로에 정차하거나 쉬지않고 달릴수 밖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부족한 휴식 여건의 도로상에서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아 나선 것이 바로 고속도로의 BS구역(Bus Stop Space). BS구역은 고속도로 노선버스의 승하장으로 쓰이며 인근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지역의 주차는 위급한 차량이나 버스의 정차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관련기관 임시방편적 행정, ‘아쉽다’
그러나 쉴 공간이 부족한 화물차 운전자들에게 BS구역은 명목상이 아닌 사실상의 화물차 전용 휴게소였던 것이 공공연한 사실.
그러나 BS구역에 화물차를 주차한 운전자가 식사와 더불어 음주를 한 후 음주운전 사고가 난 것을 계기로, 지난 2001년 하반기 화물차 운전자의 임시 휴게소 역할을 했던 BS구역은 패쇄됐다. 이에 대해 오윤석 경인지부장은 “화물차를 위한 휴식공간의 부족으로 BS구역을 간이 휴게소로 사용한 것은 잘못이지만, 휴게시설 확충도 없이 BS구역을 패쇄한 것은 한국도로공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한국도로공사는 ‘화물차 음주운전 방지대책’으로 “화물차 운전자가 버스정류장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고속도로 버스정류장 96개소를 폐쇄하거나 축소하고 대신 화물차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화물차 휴게소의 편의시설을 대폭 개선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노선버스가 운행되지 않고 주변에 식당이 있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위험이 높은 버스정류장 72곳을 월드컵 대회 이전까지 가드레일로 폐쇄하고, 폐쇄된 정류장은 내년부터 녹지대나 화단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긴급피난시설과 임시 주차장도 대부분 폐쇄됐다.
그러나 이는 화물차량의 주차공간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화물차량의 음주운전 단속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갓길이나 임시 주차장 주정차에 대한 단속강화만을 내세우는 ‘임시방편’이라는 게 오윤석 경인지부장의 주장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은 휴게소의 확충이며, 화물차 음주운전 방지대책으로 폐쇄하고 있는 긴급피난시설과 임시주차장을 복원하는 일이다. 오히려 부족하다면 시설을 추가로 더 설치해야 하며, 영업소 광장 출구쪽 일부를 주·정차장으로 활용하는 방안 등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정호휘 사무처장은 휴게소 부족과 관련, “화물차 전용휴게소를 현재 숫자보다 2배로 늘려야 하고,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일반 휴게소에도 샤워시설 등 편의시설을 갖춰 화물차 운전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도로공사는 “언양(상), 경산(상), 언양(하), 평사(하) 등엔 샤워시설을 갖췄지만, 일반 휴게소에는 주차시설과 샤워시설 등을 갖추려고 해도 물부족과 공간부족으로 확충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난색을 표명했다.

2007년까지 3,316대 주차공간 확충
한국도로공사는 향후 경부고속도로 휴게소 부산방면, 서울방면 각 16곳을 대상으로 화물차량 주차수요를 산정한 결과를 자료로, 오는 2007년까지 부산방면 1천7백71대, 서울방면 1천5백45대의 화물차가 주차할 수 있는 휴게소 주차공간을 늘리겠다는 각오다.
운행 중인 화물차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모델식으로 주차수요를 예측한 결과 부산방면은 2백32면, 서울방면은 5백86면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휴게소 관리 지침상이 기준인 산정식으로 예측한 결과 부산방면 2백8면, 서울방면은 2백60면의 여유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모델식과 산정식 모두 추풍령 전후구간의 주차수요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부산방면의 기흥, 망향, 언양 휴게소, 서울방면의 옥산, 죽암 휴게소도 향후에는 주차면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후 휴게소의 주차면에 여유가 있으므로 주차면 부족시 타 휴게소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경우 주차면의 부족현상이나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원대한 계획처럼 화물차량에 대한 구체적인 주차부지가 원활하게 확충될 지는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철저한 계획이 우선적으로 작용돼야 할 것이다.
또한 도로공사는 현재 화물차 전용 휴게소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올해 안에 경부고속도로 상에 화물차 전용휴게소 신축과 일반 휴게소에 화물차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을 갖춘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옥산(하), 경주(하)와 청원(상)은 화물차 휴게소로 각각 3백14대, 2백50대와 3백50대의 주차장과 식당, 샤워시설을 건축하고, 안성(하), 평사(하) 등 기존 휴게소에 주차부지를 확충해 주차시설을 만든다는 것.
도로공사 시설사업부 김명호 과장은 “현재 부족한 화물차 휴게소를 건축중이거나 부지 확보를 완료한 상태이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한국도로공사는 물동량이 늘어나고 차량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향후 필요에 따라 화물차 휴게소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 : 신영주 기자 / 사진 ; 모덕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