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제조사, PL법 인식해도 구체적 대응방안은 미흡
게재월 : 2002년 6월

승강기 대 메이커 중 하나이며, 오티스(Otis) 다음으로 안전을 중시하면서 전세계 2위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는 세계적인 그룹 쉰들러(Schindler)도 제조물책임법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2001년 8월 미국의 한 빌딩에 설치된 쉰들러의 에스컬레이터에 4살난 어린 소년의 발이 끼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에 대해 미 법원은 제조사인 쉰들러로 하여금 무려 1천6백97만 달러, 우리돈으로 2백20억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게 했다. 미 법원의 이러한 배상 판결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가지 사실, 즉 패소의 원인은 무엇이며, 발가락 중상 하나로 어마어마한 배상금이 어떻게 산정되었는가 하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생각해봐야 한다. 이는 “우리 업계가 제조물책임법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쉰들러의 교훈’, 제조물책임법은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 내에서 에스컬레이터에 발이 끼는 사고는 연간 1천건 정도 발생하는 흔한 사고인 만큼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농후함에도 불구하고 예방을 소홀히 했다는 점과, 안전판 설치를 하지 않은 것이 제조물책임법상 ‘설계 및 주의의무에 대한 결함’으로 판정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80년대에 생산·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는 쉰들러 자체 안전검사 결과서류가 외부에 공개된 것이 패소의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우리돈 2백20억에 달하는 배상금 산정 근거다. 당시 미 법원의 배상금 산정 근거는 크게 두가지로 우선 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발가락 중상의 부작용으로 추가적인 외과수술이 필요하고, 수술중 골수염을 비롯한 세균 감염,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추가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발의 부상으로 척추수술 등의 가능성, 한 켤레에 3백~4백 달러인 특수 신발을 평생 신어야 하는 불편과 경제적 부담, 추가 부상으로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등의 육체적 피해가 첫 번째 이유다.
육체적 피해와 함께 피해 어린이가 자신의 발을 보는 것을 두려워 하여 수영을 할 때도 양말을 착용해야 하고, 피해자뿐 아니라 그 어머니조차도 자신의 여동생을 에스컬레이터에 태우려고 했을 때 엄청난 공포(panic)감을 보인다는 것, 사고 당시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는 아버지에 대해 화를 내고 비난하는 등 피해자의 부자(父子)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정신적 피해가 그 두번째 근거다.
쉰들러가 물어야 할 배상금 액수는 아마 모르긴 해도 국내 업체의 경우라면 극소수 승강기 업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쓰러져도 몇번은 쓰러졌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에스컬레이터에 끼는 사고는 국내에서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만큼 동일한 사고유형은 물론 이와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즉시 실시해 사고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그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제조물책임법이 내달부터 본격 시행됨에 따라 이제 우리 승강기 업계도 앞서 예를 든 ‘쉰들러의 교훈’을 거울삼아 회사마다 PL법 대응방안에 대한 점검과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PL법 관련 세미나 개최
마침 제조물책임(PL)법 시행과 기업의 대응방안과 관련한 유익한 세미나(사진)가 지난달 2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돼 관심을 끌었다.
약 3백 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7월부터 시행되는 PL법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낸 이날 세미나에는, 한국소비자연구원 강창경 연구위원과 현대화재해상보험(주) 홍령 특종보험지원팀장, 법무법인 한결 윤복남 변호사가 나와 PL법과 PL보험, 사전예방과 소송대책을 중심으로 한 기업의 대응전략에 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기업과 소비자간 기대치 조정 필요
제조물책임이란 제조물의 제조자 등이 제조물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하여 피해자에게 배상책임을 지는 손해배상책임을 말한다. 이른바 불법행위책임과는 구별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조물’이란 완제품, 부품, 원재료를 포함하는 제조, 가공된 부동산 이외의 유체물로, 전기나 가스같이 관리가능한 자연력도 포함한다. 용역과 제품유통, 가공하지 않은 농수산물, 부동산은 제외된다. 다만 건축자재 등의 부동산 일부나 가공식품은 포함한다.
‘결함’이란 제품 개발단계에서 안전하지 못하게 설계되는 설계상의 결함, 원래 의도한 설계와 다르게 제조·가공된 제조상의 결함, 제품사용의 설명·지시를 제대로 못하거나 사고발생 가능성을 경고하지 않는 표시상의 결함, 기타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안전하게 설계·제조한 제조물을 만드는 것 이외에도 제조물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알릴 의무를 진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에게 알려야 할 사항을 표시하거나 제조물의 사용에서 발생할 위험에 대해 안전을 확보할 것을 미리 경고해야 한다. 또한 제조물의 기술 측면을 보완하고 제조자 등이 의도한 안전한 사용이 가능하도록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용설명서를 자세하게 작성할 것이 요구된다. 사용설명서를 작성할 때에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필요한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은 소비자 기대기준에 맞추는 것이 입법취지에 부합된다고 강창경 연구위원은 밝혔다. 강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은 언론 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이 큰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대수준이 큰 반면, 우리 PL법은 상대적으로 기업의 부담이 적은 EC지침을 참조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돌시 Gap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법 시행후 어느정도 시간을 가져 기업과 소비자간 법 인식에 대한 적정 수준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소송이 발생하면 기업이 승소한다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전한 제조물 제작이 최고의 소송대책
법무법인 한결의 윤복남 변호사는 설계상·제조상·표시상의 결함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해 이에 대한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가 제시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6개월된 아이가 침대붕괴로 질식사 하는 사고로 유아용 침대 제조사인 미국 Kolcraft사가 제소됐다. 그러자 Kolcraft사는 1심평결 전에 3백만 달러에 보상합의를 했으며, 신속한 리콜을 단행해 제품결함이 공식화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제조사가 결함을 빨리 인정하고 조속한 합의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지킬 수 있었다는 교훈을 준다.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는 쉰들러사가 설치한 에스컬레이터는 설계 결함으로 인해 안전판을 설치하지 않아 4살 소년의 발이 에스켈레이터에 끼이는 사고로 이어졌다.
이에 법원은 쉰들러사가 사고발생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을 소홀히 했고, 무엇보다 위험에 대한 자체안전검사 결과를 무시했다는 이유를 들어 1천6백97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미 Bexter사 신장투석기 사용 환자가 하루만에 사망한 사건은 생산과정 중 검사시약의 잔존물 때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일은 시약제조사인 3M사는 ‘일반 산업용이며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경고를 부착해 면책되었다는 점이다.
윤 변호사는 “소송이 일어나기 전에 제조물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소송대책”이라고 말하면서, “불가피하게 소송이 제기된 경우에, 기업이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소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초동단계에서의 신속한 대응과 제조사의 결함을 인정하여 원인규명과 추후조치를 분명하게 해야 기업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도 PL법 시행 대비 준비 강화
정부에서도 PL법 시행에 대비, 해당 관청을 통해 기업에 대한 홍보 활동의 강화, 보험가입 유도, 소송 이외의 분쟁 해결방안 마련 등을 꾸준히 준비, 실행하고 있다.
우선 재정경재부는 전국 순회 설명회 개최 등을 통해 기업에 대한 꾸준한 홍보활동을 벌이는 한편, PL제도 홍보 리플릿을 제작 배포했으며, 앞으로도 PL해설 및 사례집을 제작 배포할 예정이다. 산자부도 PL대책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전국 10개 지역 순회 PL설명회를 개최중이고, 중소기업청 역시 PL대책반 운영뿐만 아니라 안내책자, 비디오, 홈페이지 동영상을 이용해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는 산자부, 중기청, 보건복지부 산하 단체에 PL센터의 설립을 지원하여 소비자와 사업자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소비자보호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의 일부를 PL전문가로 위촉하도록 하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산하에 별도의 PL사건 전문위원회를 구성하여 PL분쟁조정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소송에 대비해 PL보험에 가입해야”
정부는 향후 PL법 시행 이후 PL소송으로 인한 기업의 부담을 고려하여 보험가입도 권하고 있다. 재정경재부는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위원회, 보험개발원과 협의하여 PL보험을 인가할 예정이다. 또 업종별 단체 PL보험 가입도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홍령 팀장은 “95년부터 PL법을 도입 운영중인 일본의 경우, 고발 상담접수가 법 시행 이전보다 2배 증가했지만 실제 소송건수는 28건에 불과했다”며, “그러나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기업 이미지는 물론, 금전상으로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므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보통 보험회사들은 자체조사를 통해 불량제품에 대한 보험은 거절하기 때문에, 보험가입 사실만으로도 제품의 안전성이 인정되어 고객의 신뢰도가 향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PL사고가 일어날 경우 보험회사는 사고경위에 대한 조사부터 사고원인 및 제조물결함 여부 조사, 법률상 배상책임여부 검토 및 손해배상금 산정, 국내외 유사사례 연구 등을 통한 소송방어전략 개발 등 소송의 모든 과정을 회사대신 처리해 주며, 회사는 설계, 제조관련 문서 등의 기술적인 부분만 서포트하게 된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후 가진 질의응답시간에는 PL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참석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자사의 업무 특성상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PL법에 어떻게 적용될 지를 묻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는 아직 기업들이 PL법 시행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처방안을 아직 확립하지 못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글·송세라 기자, 박대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