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목 : 서울시청·발산역 항의방문 및 월드컵 경기장 시위
게재월 : 2002년 7월호

월드컵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 5월 31일. 온 국민의 눈과 관심이 집중된 이 날,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는 자칫 잊기 쉬운 우리 시대의 아픔을 절규하는 몸짓이 있었다.
“더이상 죽을 수 없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장애인 이동권조차 보장않는 월드컵 행사 기만이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http://access.jinbo.net, 이하 이동권연대)를 주축으로 한 장애인들이 연이어지는 휠체어리프트 추락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대책을 촉구하며 ‘이동권 확보’를 외치는 울부짖음이었다.
작년 한해 동안 연초 발생한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로 장애인 단체들의 강력한 항의와 반발로 시끄럽더니 급기야 지난 5월 19일 서울 지하철 5호선 발산역에서 1급 지체 장애인 윤모씨(62)가 1번 출입구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에서 내리다 타고 있던 전동스쿠터와 함께 2m 아래 계단으로 떨어져 사망한 사건까지 발생해 장애인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안그래도 지난 1년간 이 문제와 관련해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비롯해 지하철 선로 점검투쟁 등 강온 대응을 입체적으로 펼쳐왔던 장애인들이기에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지난 5월 31일 10시를 기해 진행된 장애인들의 시위는 두가지 경로로 진행됐다. 한 축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 회원들의 서울시청 방문 및 차량시위, 다른 한 축은 최근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가 발생한 발산역 항의방문에 이은 월드컵 경기장 ‘진격투쟁’이 그것이다.

서울시청 방문, 2시간 동안 차량시위
이 날 장애인 단체들은 오전 10시 서울시를 항의방문하고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에 대한 책임과 재발 방지대책을 촉구하면서 2시간여에 걸쳐 시청앞 도로에 무단 주차하는 차량시위도 전개했다.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국제적 행사인 월드컵 개막식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소란스럽게 서울시청을 방문한 것은 지난해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 추락사고에 이어 지난 5월 19일 발산역 추락사고로 인해 장애인들의 추락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서울시가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발산역 사고의 발단이 전동스쿠터라는 점과 운전자의 조작실수가 뒤따랐다는 도시철도공사측의 주장을 감안한다 해도 이는 분명 안전성이 결여되어 일어난 사고이고,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온 경사형 휠체어리프트 자체가 가진 위험성 때문이라고 지적되고 있는 만큼 발산역 관계자는 “공사측은 사고자에게 ‘운전자의 실책’을 빌미로 책임전가만 일삼지 말고 대책마련 및 개선방안을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는 최근 잇따른 사고와 관련한 장애인 단체들의 원인규명 및 대책마련 요구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도시철도공사는 서울시 장애인복지과가 주관한 대책회의에서도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는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였다.
월드컵 개막식날에 있은 시청방문 및 차량시위는 도시철도공사와 지하철공사의 무성의한 답변이 연이어지자 한국장총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들이 이틀전인 5월 29일에 이미 1차로 서울시청을 방문해 공식적으로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했음에도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는 등 무성의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강행된 것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 날 내건 요구사항은 ▲사고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살인 리프트를 완전 철거하고, 엘리베이터로 전면교체할 것 ▲서울시내 이동약자편의증진위원회를 즉각 설치할 것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종합대안을 즉각 수립할 것 등이었다. 이러한 요구사항과 함께 서울시 최종 책임자인 서울시장 면담을 요청한 차량시위는 서울시 행정관리국장이 6월 3일 서울시 장애인교통현황과 대책을 담아 회의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하자 2시간여만에 자진해산했다.

승강기 안 감금 등 경찰 탄압에 분노
5월 31일 같은 시각 발산역 항의방문에 나선 이동권연대 소속 장애인들은 경찰의 원천봉쇄가 예상됨에 따라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예정보다 다소 늦은 오후 2시부터 역사 내부로 곧장 집결, 약 40여분간의 규탄집회는 큰 무리없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들이 애초 목표로 하고 있었던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려고 하자 경찰은 아예 개찰구와 장애인용 출입구를 봉쇄해버렸다. 장애인과 경찰간의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지만 이동권연대는 결국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승강장으로 내려와 ‘죽음의 기계’ 휠체어리프트를 녹색 테이프로 둘러싸버리고는 “더이상 죽음의 리프트 위에서 곡예하면서 이동할 수 없다”라는 절규의 경고문을 부착하는 퍼포먼스를 진행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이동권연대는 지하철에 탑승, 공덕역에서 무사히 환승을 하고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했지만 또 다시 공권력에 가로막히는 신세가 됐다. 이들은 경찰에 둘러싸인 채 40여분간 시민들에게 장애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알리는 선전을 진행했고 강력한 항의로 경기장 밖으로 통하는 승강기까지 힘겹게 이동했다. 경기장 밖 승강장 역시 경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었고 일부 장애인들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시위대에 합류하려고 하자 경찰측에서 승강기 전원을 차단하는 바람에 몇몇은 승강기 안에 오도가도 못하게 감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부 장애인들이 고립된 상태에서 장애인들은 1시간 동안 선전을 펼쳤고, 결국 모든 장애인들이 승강기 밖으로 빠져나와 간단히 정리집회를 마치고 시위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개막식날이어서 더욱 혼잡했던 역사 내외부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외국인들은 우리 사회의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해볼 수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이 날 경찰들의 장애인 시위 저지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고 경찰이 승강기 전원을 차단하는 무리수까지 둘 정도로 장애인 인권 및 이동권은 정권으로부터 먼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계기였다.

시, 기존 휠체어리프트 존속하에 보완
서울시청과 발산역 등에서 연달아 장애인계의 항의가 빗발치자 지난달 3일 김학재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한국장총을 찾아와 사고에 대한 사과와 향후 대책 등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 단체측은 서울시에 ▲리프트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서울시의 대안 제시 ▲전체 리프트에 대한 정밀 안전점검 실시 ▲지하철공사 등 현장 실무자의 장애인 서비스에 대한 의식전환 필요 ▲지하철 편의시설 설치와 관련한 장애인계의 의견 수렴 ▲장애인 대중교통 이용문제에 대한 종합적 교통정책 수립 ▲시장 교체 이후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 등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학재 서울시행정2부시장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와 관련 당사자의 의견이 왜곡 없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위원회 등을 구성할 것을 비롯해 ▲산업자원부와 설치 및 안전기준 보강 논의 ▲도시철도공사, 지하철공사 근로자들이 장애인 이동편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 등에 반영 ▲현재 휠체어리프트에 대해 장애인 단체의 도움을 받아 일체 점검 실시 ▲전동휠체어, 스쿠터와 관련해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것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문제의 단초가 되는 경사형 휠체어리프트 철폐와 관련해서는 더 충분한 의견을 필요한 만큼 차후 논의로 미뤘다.
서울시가 제시한 대책의 대부분은 휠체어리프트를 존속시킨다는 가정하에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대책이 지난 6.13 지방선거 이후 얼마나 연속성을 가지고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질 지 장담할 수 없는 정치현실이 아쉽다.■글·박대성 기자